결국 혼자 서기로 한 여자

입력시간 : 2019-06-04 17:26:29 , 최종수정 : 2019-09-29 16:54:01, 달문 기자

엄마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엄마 입에서 "아휴, 쟤는, 여자가..." 하는 말이 나오는 걸 간혹 듣는다. 나는 "여자가..." "남자가..." 하는 말에는 바늘에 찔린 듯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편이기 때문에 엄마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엄마는 유독 여자에게 가혹하다. 엄마가 특정 남자를 싫어할 땐, 그들의 태도에서 그들의 안 좋은 성격이 드러날 때다. 이를테면 어떤 남성 연예인이 상대방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무례하게 굴 때면 엄마는 그를 나무란다. 그런 태도는 나쁘다는 것이다.


여자의 경우엔 이러한 성격적 결함 외에 또 다른 기준이 하나 더 추가된다. 엄마는 그녀들의 행동이 여성성에 부합하지 않을 때도 그녀들을 나무란다. 엄마는 눈에 보이는 여자에게서 어떤 여성성을 찾고, 그 여성성이 드러나지 않거나 그녀의 어떤 모습이 여성성에 위배될 때, 그 여자를 '이상하다, 보기 싫다'라고 판단해버린다. 엄마의 이런 판단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어떤 강한 중력의 힘이 엄마의 판단 능력을 컨트롤하는 것처럼. 언젠가 엄마는 어떤 여성 연예인이 밤새 술을 '퍼 마셨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며 말했다.


"아휴, 쟤는 여자가, 뭔 술을 저리 마시고, 뭔 술 얘기를 저리 해."

그즈음 이, 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술을 마시며 살고 있던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매일 마시고 싶지만 참는 거였다).

"엄마 옆에 앉아 있는 엄마가 사랑하는 딸도 술을 엄청나게 좋아한다는 걸 잊지 마. 엄마의 그 기준이 세상의 기준이라면 나도 어디 가서 맨날 욕먹고 살아야 할 거야. 내가 욕먹는 게 좋아?"


나는 엄마가 여자에게 요구하는 여성성이라는 틀에 완벽히 부합하는 여자는 사실상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마도, 나도, 특히 나는, 그 틀에서 멀어진 지 오래일 것이라고도 말했다. , 사실상 그 틀은 이미 예전에 폐기처분됐어야 하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 틀은 노골적이거나 은근한 형태로 여성의 삶을 억압하고 있다고도 이어 말했다. 따라서 여전히 이 시대의 여성은 이중의 껍질을 깨고 나가야하는 존재이다. 1단계로 여성성이라는 껍질을 깨고 나간 뒤, 2단계로 헤르만 헤세가 말한 그 껍질을 깨고 나가야 비로소 자유로운 존재,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엄마는 내 말을 들으면 '그러게, 내가 왜 자꾸 여자, 여자 할까' 하고 의아해하는데, 그거야 사회가 여성인 엄마를 억압한 결과가 엄마 안에 고집스런 돌덩이처럼 내재되었기 때문일 터였다. 사회가 엄마를 여성성의 틀에 끼워 맞추려 한 그대로 엄마도 엄마 자신을 여성성의 틀에 끼워 맞추려 노력했을 테고, 그리고 그 틀 그대로 다른 여성들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엄마 안에 단단히 자리잡은 돌덩이는 호시탐탐 여성을 노린다. 엄마는 그 돌덩이를 자기 자신에게도 던져봤고, 다른 여성에게도 던져봤다. 엄마는 분명 누군가의 돌도 맞아봤을 것이다. 그렇게 서로 돌을 던지고 맞으며 자기 자신과 상대의 삶에 상처를 주고 피폐함을 전이하며 살았던 것. 엄마는 이렇게 살게 되었던 것 뿐이다.

그렇다면 여성성이라는 건 무얼까. 소설 <서 있는 여자>에서 연지의 남편 철민은 여성스러운 건 이런 뜻이라며 연지에게 설명한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너그럽고, 겸손하고, 남자 기고만장할 땐 애교 부리고 응석 부려 그 기분을 고조시켜주고, 남자가 의기소침했을 때는 지혜로운 격려와 꽁꽁 뭉쳐놓은 비상금으로 재기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남자가 집에 있을 동안만이라도 철저하게 왕이나 승리자의 환상을 가질 수 있도록 시녀나 패자의 연기에도 능한 여자, 음식 잘하는 여자, 섹시한 여자, 돈 적게 들이고 옷 잘 입는 여자 등등..."


철민이 한 위의 말을 듣고 열 받지 않는 여자는 이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성인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우리 태도를 점검할 때가 있는데, 그렇다는 건 여전히 위의 기준이 우리 안에 존재하며 가끔 우리의 의지와 생각을 압도하고 있다는 말이다. 철민의 말은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이라는 것이 결국 무엇인지 알려준다는 면에서 의미 있다. 여성성에는 주체적인 ''가 없다. 나를 위한 태도, 나를 위한 재능, 나를 위한 노력이 없다. 여성인 ''는 그저 남편이라는 타인, 사회라는 거대한 타인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여성성이란 개념은 여성을 집 안에 가둬두고 요긴하게 써먹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진데, 우린 여전히 이 여성성을 집 안뿐 아니라 집 밖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자들에게도 요구한다. 언제 어디서나 부드럽고, 따뜻하고, 너그럽고, 겸손한 여자이길 요구하는 것이다.


독자적인 삶을 바라는 1980년대 여자

박완서 소설 <서 있는 여자>는 정말이지 너무 읽기 힘든 소설이었다. 넘기 싫은 허들을 계속 넘는 기분으로 읽었다. 허들을 반복해서 넘을 때마다 무릎이 망가지듯 마음이 망가지는 기분이 들었다. 도저히 못 읽겠다는 생각은 세, 네 번쯤 했고 실제 하루, 이틀 정도 책을 덮어놓은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다시 책을 손에 들었다. 뛰어난 소설가가 예리하게 그려 놓은 1980년대 초반의 분위기를 알고 싶다는 일념 하나 때문이었다. 허들을 넘을 때마다 나는 마음을 그 어느 때보다 단단히 먹고 내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책 속에 나오는 거의 모든 대화들이 여성인 나, 내가 추구하는 생활 방식을 공격하는 말 같았기 때문에.


소설 주인공 연지는 1970년대 말에 대학을 나와 1980년대 초반을 살아가는 여성이다. 그녀는 대학 교육을 받았고, 잡지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그녀의 꿈은 결혼을 해도 '독자적인 삶'을 유지하는 것이다. 책 제목에서 말하듯 그녀는 그녀의 힘으로, 그녀의 방식으로 서 있고 싶어 했다. 다른 여자들처럼 남편에게 의존하는 삶이 아닌 홀로 선 삶. 다른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 아닌 자기 방식대로 사는 삶. 연지는 짧은 커트머리에 청바지를 입고 다니며 직업여성으로서의 성공을 꿈꾼다. 연지는 결혼을 한다고 해서 일을 그만둘 생각도 없다. 결혼 상대 또한 부모님이 정해주는 사람이 아닌 연지가 선택한 사람으로 정했다.


독자적인 삶을 추구한다고 해서 그녀의 내면에 가부장제의 흔적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가부장제의 압력이 어떤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다짐한다. 나는 독자적인 삶을 살 거야. 꼭 그렇게 살고 말 거야. 연지는 결혼을 하기 전에도 남자 친구 철민에게 지속적으로 다짐을 받는다. 우리는 꼭 독자적인 결혼 생활을 해야 한다고, 내 결혼의 목표는 오로지 그것뿐이라고.

"자기도 내 꿈이 뭔지 알지? 독자적으로 사는 거야. 혼자 산다는 뜻하곤 달라. 내 나름의 독자적인 삶의 방법대로 살고 싶어. 우리 결혼도 독자적인 거여야 돼."


연지의 결혼 생활은 처음부터 남들과 달랐다. 연지가 돈을 벌고 철민이 공부를 하면서 집안일을 하는 것부터가 그랬다. 철민이 공부를 끝내고 나면 철민이 돈을 벌고 연지가 공부를 하면서 집안일을 하게 될 터였다. 나중에 두 사람 모두 돈을 벌게 되면 그때는 공평하게 집안일을 분배할 셈이었다. 하지만 연지가 그토록 원하던 독자적인 결혼 생활 속에서도 연지는 행복하지 않다. 그녀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남성 우위의 개념이 자꾸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는 철민이 설거지를 하게 내버려두는 것도 괜히 미안했다. 그녀가 전날 밤 남편 친구 열다섯 명의 뒤치다꺼리를 했던 것을 생각하면 미안해할 일이 전혀 없는데도 미안한 마음이 깨끗이 사라지진 않았다.


연지가 가부장제의 힘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내면의 다툼을 끊임없이 벌이고 있을 때, 소설 속 모든 인물은 노골적인 가부장제 옹호자로 나선다. 주요 인물인 연지의 부모조차 연지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살아가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여성으로 길들여지길 바란다. 연지는 그저 그녀가 살아가고 싶은 방식으로 살고자 할 뿐인데, 그 누구의 응원도 받지 못한다. 연지에게도 세상은 매 순간 허들 뛰어넘기다. 무릎이 다치고 몸 여기저기가 까져도 아무도 그녀의 상처를 보듬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반긴다. 이 상처를 통해 그녀가 제정신을 차리길. 그녀 역시 다른 여자들처럼 애 낳고 집안 살림 하는 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길.


언젠가 엄마는 그런 말을 했었다. "나 때는 여자는 나이 차면 다 결혼해야 하는 줄 알았어. 결혼 못하면 큰일 날 일이었고. , 여자가 직업을 가지면 팔자 세다는 소리도 들었다?" 나는 엄마에게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아우, 답답하다, 답답해"하며 괜히 엄마를 답답해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며 엄마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비로소 완전히 이해했다. 1980년대 초반을 연지와 비슷한 나이로 살아간 엄마에게 이 세상은 그런 곳이었다. 여자의 자유와 개성과 욕망을 억압하던 곳. 아내와 엄마가 아닌 여성을 인정해주지 않던 곳. 그래서 여자들이 두려움에 떨며 스스로를 집 안에 가두게 하던 곳.


그래서 나의 엄마는 세상이 살라는 대로 살기로 작정했고, 여전히 엄마는 자신의 자유와 개성과 욕망을 들여다보길 두려워한다. 그 시대를 거쳐온 거의 모든 여성들이 그러는 것처럼. 반면 소설 속 연지는 거의 모든 여성들이 그러는 것처럼 자기도 그러기를 바라지 않았기에 그녀에게 닥친 고난은 어쩌면 뻔했다. 연지는 신혼 초반부터 그녀의 삶이 덜그덕거리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원치 않은 임신, 남몰래 선택한 임신 중절, 결혼 후 회사에서 받는 눈치,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는 철민, 철민의 폭력, 철민의 부부 강간, 철민의 바람, 그럼에도 연지에게만 참으라고 말하는 이 세상의 입. 마치 이 세상은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어떤 여성이든 모욕하고 멸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연지의 남편 철민은 여자가 여성성에서 벗어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이 세상의 경고 같은 인물이다. 철민은 연지가 자기 주장을 하더라도 귀엽고 매력적인 방식, 그러니까 남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길 바랐다. 하지만 연지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어 그녀의 방식대로 그녀의 생각을 전했는데, 그럴 때면 철민은 연지를 향해 비아냥 거리거나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여자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면 서슴없이 폭력을 가하는 남자였고, 또 바람피운 걸 들킨 순간에도 이런 일쯤은 남자에겐 큰일이 아니라며 도리어 연지에게 여자답게 굴라고 종용했다. 이로써 연지의 내면에선 이 결혼은 이미 파탄 났다. 연지는 남들처럼 살 것이었으면 철민과 결혼할 필요가 없었다. 철민이 독자적인 결혼 생활을 영위하겠다고 약속했기에 그와 결혼했던 거니까.


'작가의 말'에서 박완서는 이렇게 말했다.

"이 글을 <떠도는 결혼>이라는 제목으로 <주부생활>에 연재하면서 <주부생활> 독자가 얼마나 보수적인가를 통감해야 했다. 결혼이란 제도는 어떤 풍파든지 견디고, 종당엔 해피엔딩을 맞아야 한다는 독자들의 극성스러운 바람은 나에게 적지 않은 압력이 되었다. 또 나 자신의 바탕 역시 보수적이라는 것도 문제였다. 당초의 의도대로 어머니 세대의 결혼은 아내가 온갖 굴욕을 참고 자신을 죽이면서 그 제도를 지키는 걸로, 딸 세대는 아내만이 일방적으로 그 제도를 지키는 일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과감히 혼자가 되는 걸로 결말을 맺어, 독자들의 기대를 배반하기가 나로서는 무척 힘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몇 문장 뒤에 박완서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러므로 그 여자를 혼자 살게 한 게 곧 그 여자를 불행하게 만든 거라고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작가의 의도대로 연지는 이혼을 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엔 "활짝 피어나는 것처럼 화색과 윤기"가 돌았다. 본인이 뭘 잘못했는지 눈곱만큼도 깨닫지 못한 남편이 나간 신혼집에서 혼자 사는 그녀는 또 다른 사랑을 꿈꾸는 대신 고독을 즐긴다. 그녀의 꿈인 작가가 되기 위해 타이프라이프에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낸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만큼은 그녀는 사회의 평가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녀는 그녀의 집에서 그녀를 위해 장을 보고, 그녀를 위해 밥을 차리고, 그녀를 위해 설거지를 한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연지는 버릇처럼 창문을 활짝 열고 세상을 바라본다. 그녀는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의 이미지 속에서 "따뜻한 유대감"을 느낀다. 바람대로 완전히 독자적으로 서 있게 된 연지는, 비로소 세상과 더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여전히 동등하기 어려운 이 시대의 여자

연지가 결혼 조건으로 내세운 건 독자적인 삶뿐만 아니라 동등한 삶이었다. 연지는 결혼을 했다고 해서 남편을 하늘처럼 떠받들으며 살고 싶지 않았다. 연지는 자신의 엄마처럼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편의 냉대와 이기적인 태도를 감내하며 굴욕적인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연지 역시 결혼을 하자마자 남편에게 존대를 하게끔 길러진, "낮에 나가 돈 벌고 밤엔 종종걸음쳐 장봐가지고 들어와 밥 지어서 자기는 생선 토막 먹이고, 난 꼬랑지 먹"는 게 편한 그 시대의 여성이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여성은 많이 달라졌을까. 나는 이십 대 중, 후반부터 결혼한 친구와 지인들에게 결혼 생활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가장 일반적이면서 사소하달 수 있는 이야기는 설거지나 음식물 쓰레기, 청소 같은 소재를 담고 있었다. 친구는 워킹맘이고 친구의 남편은 공부를 하는 상황인데도, 친구는 자기가 설거지도 청소도 다 해야 한다며 분개했다. 그때만해도 나로선 이해가 가지 않는 분개였다. "남편에게 하라면 되잖아, 너가 돈도 벌고 집안 일도 다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하면 되잖아." 그러면 친구는 요 순진한 녀석 보게 하는 눈빛으로 날 보며 말했다. "하란다고 하니?" 하란다고 하냐니. 그렇다면 왜 그런 사람과 살아야 한단 말인가 하는 눈빛으로 친구를 멍하니 보면 친구는 한숨을 푹 쉬며 내 마음을 이해한다는 투로 말했다. "나도 말해봤지, 그런데 싸움만 하게 되더라, 애들이 싸우는 걸 얼마나 싫어하게, 싸움을 안 하려면 내가 움직이는 수밖에 없어."


친구의 옆에 앉아 있던 또 다른 친구는 더 답답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친구의 남편은 요즘 남편의 직장 동료 칭찬에 여념이 없다고 했다. 그 직장 동료는 일도 잘하면서 집안일도 잘하는 슈퍼우먼(철 지난 용어이지만, 그 남편이 실제 이 단어를 사용했다)인데, 그 직장 동료의 남편이 부럽다는 거였다. 친구가 어느 날 나도 일을 하고 들어오면 힘이 든다, 그러니 당신도 같이 가사일을 해달라 하고 말하자 대꾸랍시고 하는 말이라고 했다. 친구 남편은 당신이 여자니까 집안 일을 하는 게 맞다는 말을 했다는데, 나는 내가 전해 들은 이 말이 2018년에 사십 대 초반의 나이를 살아내고 있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맞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허를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 순해서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하지 못하는 친구는 결국 남편의 뻔뻔함을 이기지 못한 듯했다.


나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1980년대에 태어난 우리지 않은가. 우리는 충분히 사랑받고, 충분히 공부했으며, 충분히 능력 있지 않은가. 우리가 일방적으로 참아야 할 필요 없지 않은가.


나는 어차피 내 부모 세대의 전형적인 결혼 생활에선 기대하는 바가 없었다. 남편이 돈 벌어오고, 아내는 집안일을 하는, 남편은 높은 존재이고, 아내는 낮은 존재인, 남편은 일 이외엔 무능한, 아내는 가정 일 외에는 무능한, 이런 구도에서 내가 기대할 바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구도에서 겉보기에 아무리 평화롭고 안정된 결혼 생활이 유지된다고 해도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내가 기대했던 건 내 세대의 이야기, 내 똑똑하고 능력 있는 친구들이 만들어갈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회사에서 만난 카리스마 있고 멋진 선배들이 들려줄 이야기였다. 나는 그들의 결혼 생활에서 내가 기대하던 어떤 모습을 보기를 바랐다. 그러니까, 이런 모습. 서로 돕고 아끼고, 서로의 발전을 바라고, 서로를 위해 함께 배려하고 고려하는 모습.


하지만 내가 전해 들은 그녀들의 결혼 생활 이야기는 내가 바라던 것과 많은 부분 동떨어져 있었다. 그녀들의 결혼 생활은, 어딘지 절망스러워 보였다. 이 절망은 결혼 생활이 그녀들을 한없이 참아야하는 존재로 만들어가는 것과 관련돼 있었다. 우리는 '동등한 삶'이라는 것은 마치 천부적인 인권처럼 우리가 이미 갖고 태어난 것인 줄로만 알았다. 우리에게 동등한 삶이란 연지처럼 투쟁해서 얻어야 하는 것이 애초에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 친구와 지인들은 결혼생활에서 여전히 동등하지 못했다.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더 많이 일해야 하는 건 그녀들이었다. 나는 마음이 답답할 때면 그녀들에게 했던 질문을 또 하곤 했다. "어떻게 그걸 참아? 어떻게?" 그러면 그녀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야 결혼 생활이 유지되니까." 1980년대를 이십 대의 나이로 겪어온 그녀들과 1980년대에 태어난 그녀들이동등하지 못함을 참아내야지만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면에서는 같다는 걸,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뼈아프게 깨달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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