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 단편집 l 필리핀인데 시원한도시 l 김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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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9-09-29 16:26:35 , 최종수정 : 2019-09-29 16:26:35, 오도현 기자



필리핀은 열대 지역에 속한다.

필리핀 날씨는 건기와 우기로 나누어지는데 건기 때는 조금 덜 덥고 우기에는 정말 더우면서 태풍들이 방문한다그냥 태풍이 조금 오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30여 개의 태풍이 매년 오고 그중 일부는 일명 슈퍼 태풍으로 불리면서 큰 피해를 가져온다한국의 장마도 피해가 컸지만필리핀에서 태풍은 전 학년 수업 취소를 시작으로 일상을 바꾸어버린다그래서 여름철에 필리핀에 온다면 자칫 태풍 때문에 비행기 연착과 함께 여행의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다이런 태풍 이야기를 빼더라도 필리핀은 날씨 자체가 덥기에 여름에 약한 사람들에겐 기피 대상이 될 수 있다내가 유학 갈 때도 사람들은 더위를 많이 타는 나를 걱정해주면서 거긴(필리핀더 더운데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고 묻곤 했다그럴 때마다 난 조금 난처해하면서 설명을 시작한다, “제가 지내는 도시는 안 더워요라고.

 

난 필리핀에서 8년 정도를 지냈지만여행으로 방문한 도시들을 제외하면 주로 한 도시에서 쭉살았다그 도시의 이름은 바기오였는데 바기오는 좀 많이 특별한 곳이다. “바기오라는 이름 자체가 필리핀어로 태풍바람을 의미한다지리적으로는 필리핀 북부 루손 섬에 위치해 있으면서 해발 1,500m에 형성된 고산 도시이다그렇기에 여긴 보통 가을 날씨에서 초여름 날씨를 왔다 갔다 하는데 늘 20도 정도를 유지한다그래서 가을과 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최고의 날씨였고 필리핀에서 더위보단 선선함에 푹 빠져 있었다이런 날씨 덕분에 미군이 주둔할 때는 이 도시에 군인 휴양 시설을 만들기도 했고 여름 수도라는 애칭까지 도시에게 주었다지금 필리핀 정부도 여름에는 많은 정부 기관과 대통령이 바기오로 이동해서 업무 및 휴가를 보내기도 한다날씨 하나로 이 도시 참 많은 사랑을 받는다.

 

바기오를 말하면서 날씨 이야기도 중요하지만고산 도시로서 특징도 신기하다.

바기오 근처에는 90년대까지 산지 부족들의 전쟁전투가 있었다필리핀 공포스릴러 방송들은 그 시대를 배경으로 작품을 만들 정도로 유명한 역사였다그런 부족들의 대립을 필리핀 정부는 최대한 방지하려고 했고 이때 바기오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행정군사적 통제가 이루어지게 되었다그래서 바기오는 행정적으로 정부의 지지를 받고 학교 시설을 중심으로 주변 산지 부족들을 교육통합했다지금도 바기오에 있는 수백 개의 초등고등학교와 대학교에는 바기오 시민들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유학생(산지 도시부족 출신)들이 다니고 있다그렇게 서서히 부족 전쟁은 그치게 되었고 지금은 같이 바기오에서 교육받으면서 갈등이 점차 최소화되었다바기오는 이런 의미에서 통합교육 도시의 정체성도 가진다물론 이런 바기오의 특성 때문에 나도 유학을 결정할 때 선택지가 많았고 지금 돌이켜보면 좋은 환경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마칠 수 있던 것 같다그리고 다 같이 집을 떠나온 입장이었기에 서로 마음을 열기에도 더 쉬웠다.

 

이렇게 높고 시원하고 학교가 많은 도시가 필리핀에 있다중학교 때 처음 간 나는 그 도시에 이끌려 유학까지 하게 되었다열대 나라에도 시원한 도시는 있다태국에는 치앙라이가 있고 필리핀에는 바기오가 있다더운 나라에도 사람은 살아가고 있고 때론 시원하고 추위를 때때로 느끼면서 지낸다이렇게 보면 우린 서로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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