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절반 이상은 행복하게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반올림하면 행복이니까> 저자 한희림

입력시간 : 2020-01-14 22:04:40 , 최종수정 : 2020-01-14 22:04:40, 김미진 기자



책 소개


 '행복해야지, 하고 생각하던 것을 그만두었다.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에게 어느새 짐이 되어 오히려 행복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인생이 즐겁기만 하다면, 어쩌면 그것이 행복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니까. 대신 삶의 반 이상은 꼭 행복의 형태이기로 했다. 하루에 깨어있는 18시간 중 9시간은, 7일 중 4일은 평온하게, 시시하고 평범하고 작은 기쁨을 찾아야지. 그렇게 했을 때 나의 인생을 반올림하면 결국 행복이니까.'


 <반올림하면 행복이니까>는 한희림 작가의 에세이다.

 책은 작가의 일상에 대한 글과 필름 카메라로 직접 촬영한 사진들로 구성되었다. 항상 행복하는데에 집착하기보단, 인생의 절반 이상은 행복하게 보내기로 마음먹은 작가의 일상들에 대한 기록이다.

 작가는 희망한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의 과반수가 행복인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출처: 다시서점>



저자 소개


 저자: 한희림


 


목차


 총 164페이지




본문


 - 희림 님, 클럽 가본 적 있어요?

 선배가 운전석에서 백미러를 바라보며 뒷좌석에 앉아있는 나에게 물어보았다. 회식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 아뇨, 왜요?

 - 그냥 가봤나 해서.

 - 선배님은요?

 - 많이 가봤지. 클럽에서 알바도 해봤었는데. 나 잘 나갔어요.

 - 네, 그러시겠죠.

 꽤 친한 선배였기 때문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진짠데. 안 믿네, 하면서 선배는 씩 웃었다. 키도 크고 멀끔한 선배였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했다. 


 - 저는 밤잠이 많아서 그때까지 못 깨어있겠네요. 

 - 나 그것도 했었는데. 클럽매니아라고, 네이버 카페에서 클럽 동행도 구할 수 있어요. 

 - 그럼 그냥 거기서 사람 만나는 거예요? 안 무서워요?

 - 그닥. 클럽에 다니다 보면 사람을 무지 많이 만나요. 그래서 어디에서 왔어요 부터 호구조사 하는 법 다 알게 되거든. 하도 사람들 많이 만나고 다녀서 이제 대충 어떤 사람한테는 어떻게 하면 친해지는지도 알아요. 


 이 부분이 내겐 몹시 흥미로웠다. 사람 마음을 얻는 어떠한 방법이 있다는 걸까? 마치 머신러닝처럼, 예제를 아주 많이 습득하다 보면 결국 어떠한 정교하고 정확도 높은 알고리즘이 발생하는 것일까? 선배는 밝고 즐거운 사람이었고, 언짢은 일에도 침착하게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는 사람이었다. 장난을 치면서도 선을 지켰고, 농담을 할 때는 특유의 표정과 말투로 농담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했다. 그런 능력은 선천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사람들과의 잦은 접촉에서 습득된 걸까? 아쉽게도 그때쯤 회식 장소에 도착했기 때문에 거기서 이야기가 종료되었다. 


 그 뒤로 나는 새로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답장을 남겼다가 우연히 대화를 시작한 적이 있다. 그녀는 주말인데 무어를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혼자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사실이었다) 그녀는 누구의 책이냐 물었다.


 - '친밀의 알고리즘' 중에서 -



 얼마 전에 너의 장례식을 다녀왔다. 아무리 준비를 한다고 해도 모든 이별이 갑작스럽기에 나의 조부상, 애인의 부친상 모두 나를 당황케 했지만 나와 같이 수학한 학창시절 동료가 더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나를 어쩐지 이승과 분리해놓은 기분이었다. 


 고작 몇 번 입어보았다고 정장이 더이상 낯설지 않았다. 검은 바지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은 후 무채색 코트를 걸치고 버스를 타고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제법 어른스럽게 대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라우리만치 차분했다. 마치 짐작만 하던 탈락을 진짜로 확인한 기분이었다. 차마 부정하지는 못하고 왜? 라는 생각과 이제는 어떻게 해야하나, 그런 생각. 


 입구 ATM에서 현금을 뽑으면서 우리의 관계를 금전으로 가늠해보았다. 장례식장의 슬픔과 그 잔인한 현실성은 나를 항상 혼란스럽게 했다. 애환이라는 고귀한 감정과 더불어 칼같은 이해관계로 얽힌 사람들의 방문. 이처럼 감정의 극단과 이성의 극단이 공존하는 공간이 또 어디 있을까. 고인을 알지도 못했을 사람들이 보낸 화환들이 인부들에 의해 끝없이, 꾸준히, 힘차게 그 무거운 공간에 밀려왔다. 몇 호요, 몇 호요 하는 그 크고 쾌청한 목소리는 이곳과 어울리지 않았다. 

 

 장례식장 TV에는 고인들의 영정 사진과 상주 이름이 뜨면서 호수를 안내하고 있었다. 상주에 아들이나 딸이 아닌 부모가 뜨는 건 너뿐이었다. 영정 사진은 나도 이미 본 적 있는 너의 밝은 사진이었다. 네가 제법 잘 나와서 네 친구들이 놀렸던 사진이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한복이나 정장을 입고 있었다. 마치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는 듯이 미리 찍어놓은 사진이었다. 너는 나와 함께 학교에 다닐 때 입던 패딩을 입고 있었다. 그 화면 안에 있기에 너는 너무 젊었다. 아니, 너무 어렸다. 앳된 너의 모습이 나를 겨울나무처럼 외롭게 했다. 


 - '장례식' 중에서 -



 얼마 전 상갓집을 다녀왔다. 왜 매년 상갓집을 가게 되는 걸까, 생각하자 어쩐지 다 쓴 티백처럼 기진맥진하고 축축한 기분이 되었다. 퇴근 후 정장으로 갈아입고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러시아워의 버스는 만차였다. 손잡이를 잡고 조금씩 지친 이름 모를 사람들과 버스의 덜컹거리는 움직임에 맞추어 함께 흔들렸다. 여름날이었다. 긴 해가 그제야 지고 있었다. 언제 더웠냐는 듯 서늘한 저녁 바람이 불었다. 한강의 표면에는 노을빛이 작은 알갱이로 부서졌다. 버스는 한남대교를 지났다. 사람들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졌다. 강 양편의 높은 아파트 창문에 하늘이 비쳐 온 시야가 쓸쓸한 노을빛으로 젖어 들었다. 그토록 눈부신 하늘은 나의 목적지를 더욱 서글프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모든 것을 기록하겠노라고 다짐했던 나의 손은 휴대폰을 집으려다가 관두었다. 


 - '한담대교, 19시' 중에서 -



 여행이 삶을 바꾼다고 믿지는 않지만, 여행은 분명 그 이후의 삶을 살기 위한 원동력이 된다. 대학교 2학년 때 20일간 고등학교 친구와 간 유럽 배낭여행이 그랬다. 어린 나의 눈에는 이국적인 모든 자유와 건축과 음식과 길거리가 너무나 자극적이었고 나는 그것들을 체할 걱정 없이 급하게 눈으로 집어삼켰다. 


 그렇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로마에서 피렌체로 이동하는 기차다. 마주 보는 네 좌석을 운 좋게 잡은 우리는 부산스럽게 트렁크를 쑤셔 넣고 옆 의자에 배낭과 짐들을 던져놓았다. 서로 마주보고 앉자 기차가 곧 출발했다. 아침 기차는 한산했다. 우리는 기차역에서 산 3.99유로짜리 커피와 빵을 테이블에 꺼냈다. 싸구려 머신 커피 한 잔과 버터가 듬뿍 들어있는 크로아상이었다. 기차가 흔들리면서 커피잔에 파장이 잘게 일었다.


 - '내 행복의 고향 #2' 중에서 -



 언니는 엄마 아빠가 더 나이를 들기 전에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어요. 할머니께도 잘해야 하는데, 그 생각이 부모님까지만 미치고 할머니께 잘 닿지 않아 죄송하다고.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며, 역시 언니는 그래서 첫째인가 싶었어요. 나는 아직 엄마 아빠에게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오락가락하는걸. 나에겐 아직 부모님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나 봐. 주말에는 그래서 친구들과 항상 놀고, 엄마 아빠랑은 밥도 잘 안 먹은 것 같네. 최근에 할머니와 통화한 언니는 편찮은 몸으로 혼자 사시는 할머니께서 하루하루가 징역을 사는 것 같다고 하셨다고 전했어요. 나와 언니 모두 그 말의 무게에서 헤어나오느라 잠시 침묵했지. 


 아빠, 아빠도 언젠간 그렇게 느끼게 될까. 나도 삶에 치인다는 이유만으로 아빠의 존재를 잊으면 어쩌지, 하고 무서웠어요. 아빠가 전에 그랬잖아, 너희가 결혼할 남자를 데려오면 슬플 것 같은데 그 사람이 아빠 마음에 들면 정말 슬플 거라고. 마음에 들면 다행이지 무슨 소리야, 하고 엄마는 핀잔을 줬지만 나는 아빠의 마음이 마냥 사랑스러웠어요. 그치만 아빠는 정말 슬플 것 같아 그렇게 말한 거였겠지. 그때 이미 아빠의 얼굴은 울상이었으니까. 


 내가 중학생 때, 지금보다는 좀 더 어리고 여릴 적, 따돌림을 당했던 거 기억나요? 밤에 스탠드만 켜놓고 울고 있었지. 아빠, 나는 그런 경험이 사람의 마음에 어떤 얼룩을 남긴다고 생각해요. 닦아서 없어질 때도 있지만 재수가 없으면 닦아낼수록 더 번지기만 할 때도 있잖아. 우는 나를 발견한 아빠는 내겐 나 자신을 돌아보라며 강한 척했지만 언니는 아빠가 그날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밤늦게 돌아온 언니 앞에선 울먹거리며 이 이야기로 상담을 했다고 전해줬지요. 나는 가끔 그 때의 아빠 마음을 헤아려봐요. 갓 사춘기에 접어든 딸이 해외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아빠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정말로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그 날 아빠에게 우는 걸 들키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아빠까지 울게 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 136페이지 중에서 -



 저도 제가 싫지만 인제 와서 저를 바꿀 순 없는데, 왜 자꾸 제게 상처를 주시는 거예요, 라고 하고 싶었지만 목끝까지 올라온 그 말을 꿀꺽 삼켰다. 나는 여전히 할머니를 사랑했다. 그렇게 모진 말을 할 자신은 없었다. 그러기엔 나는 할머니가 약할 뿐, 절대 악하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한두 달 이어진 입원 후에 할머니는 퇴원하셨다. 요즘은 할머니께 자주 전화를 한다. 자취해보니 동거인 없이 혼자 산다는 것이 얼마나 사무치게 외로운 일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내가 친구들에게 회사 생활에 대해 불평하듯이, 할머니도 당신의 아픔과 삶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어쩌면 어른들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도 어른이 되어야 했나 보다. 


 - 106페이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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