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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당신을 이야기하기 위해 용기를 낸 21명의 자녀들.

김미진 기자 / 기사승인 : 2020-03-22 08:3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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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같은 당신께 겨울 같던 우리가] 저자 문장과장면들 대표, 가랑비메이커, 고준영의 딸 고애라 외 20명의 자녀들

책 소개



<거울 같은 당신께 겨울 같던 우리가>는 '문장과장면'들의 비정기 프로젝트 [이달의 장르]의 첫 단행본으로, 기획자 가랑비메이커와 독립출판 작가 기영석, 임나운, 박수진, 박지수, 주예슬 등을 비롯한 21명의 작가진이 자유롭게 참여했다.


「사랑하기 위해 멀어져야만 했던 당신과 나


21명의 자녀들이 말하는 나의 아버지.


떠나왔다고 생각했을 때, 가까워지는


더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을 때, 더욱 절실해지는


아버지, 당신을 이야기하기 위해 용기를 낸 21명의 자녀들.」


책은 에세이, 시, 소설, 만화, 인터뷰, 설문 등 서로 다른 시선과 방식으로 각자가 생각하는 아버지를 옮겨두었다. 여전히 서툴고 부족한 마음일지라도, 그 모두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아버지'는 알기에, 한 권의 이야기가 맺어질 수 있게 되었다.


'문장과장면'들의 비정기 프로젝트 <거울 같은 당신께 겨울 같던 우리가>는 독자들에게 다시 한번 아버지의 소중함과 그의 헤아릴 수 없는 깊은 마음을 상기시켜줄 것이다.



출처: 문장과장면들
출처: 문장과장면들


저자 소개



저자: 문장과장면들 대표, 가랑비메이커, 고준영의 딸 고애라 외 20명의 자녀들



어릴 적에는 아빠를 닮았다는 말에 울음을 터뜨렸지만, 이제는 거울 앞에서 마주하는 쓸쓸한 사내의 모습에 더욱 잘 살아가기로 다짐한다. 그럴듯한 이야기보다 삶으로 읽히기를 바란다. 낮고 고요한 공간과 평범한 사람들에 이끌린다. 단상집 시리즈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거기를 말한들』, 『숱한 사람들 속을 헤집고 나왔어도』, 장면집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 고백집 『고요한 세계에 독백을 남길 때』를 썼다. 책과 영화를 좋아하고 사진을 찍는다. 이따금 다양한 사람들과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을 진행한다.





목차



문을 열며>


닮은 구석을 안고 살아가면서 우리는 왜 더 멀어질까 012



에피소드>


아이디는 쌍둥이 아빵 021 / 당신의 필름카메라 026 / 커다란 나무라고 생각해 028 / 미친듯이 한 번 살아봐 032 / 공항, 배웅을 마치며 034 / 드라이브 속 드라이브 037 / 아빠의 말들은 내게 문장이 됐다 043 / 다 자란 자식에게도 필요한 것이 있다 044



인터뷰>


대신 물어봐 드립니다 050



이름 없는 설문>


아버지에 관한 여섯가지 072



<나의 아버지, 당신에 대하여


사랑해서 - 고준영의 딸, 고애라 096 / 건강한 삶 - 기새복의 아들, 기영석 102 / 당신의 찬란한 삶, 지금부터 - 한명웅의 딸, 한정선 106 / 있는 것도 아닌 없는 것도 아닌 - 최인기의 딸, 최희진 112 / 가장은 명사가 아닌 부사 - 박중규의 딸, 박지수 116 / 멘소래담 - 노재헌의 딸, 노유은 124 / 아버지 그리고 아빠 - 엄영수의 아들, 엄준태 126 / 수진 아빠 그리고 후식 씨 - 박후식의 딸, 박수진 128 / 부전여전 - 주태환의 딸, 주예슬 132 / 딸에게 - 민태의 딸, 나선 142 / 아빠의 보호자가 되었다 - 김우기의 딸, 김경아 148 / 아빠라는 단어 - 김새승의 딸, 김재희 152 / 아버지에 대한 최초의 기억 - 윤명준의 아들, 윤동주 156 / ABC와 프라이드 - 임용빈의 딸, 임나운 160 / 사랑하는 방법은 다양한데 - 대복의 딸, 서영 166 / 지금, 당신 - 권혁봉의 아들, 권계성 174 / 아빠 그리고 남산 - 김승남의 아들, 김광영 180 / 민이네 집 - 백상현의 아들, 백승민 186 / 불리하지 않은 출발 - 하만생의 아들, 하정웅 192 / 아빠에겐 너무도 낯선 서울 - 정인길의 딸, 정이분 196



문을 닫으며>


삐걱거리는 나무 서랍에서 낡은 일기장을 꺼내는 용기 208



기획 노트>


비정기 간행물 프로젝트 <이달의 장르> 214



고마운 사람들>


21명의 이달의 작가, 그리고 215



부록 : 당신에게 부치는 편지>


못 다한 이야기 218





본문



내게 거울 같은 당신, 아버지



어릴 적부터 유독 아버지와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으며 자랐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말이 싫었다. 친척들이 모인 자리나 동네 이웃들이 함께 탄 엘리베이터에서 그 이야기를 들을 때면 재잘거리던 입은 꾹 닫혔다. 그 입은 이따금 삐죽거리거나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섭리 앞에서 울어버리고 마는 나를 보며 아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유독 자신을 잘 따르던 막내딸이었으니까.



사실은 나도 그 눈물의 이유를 잘 모르겠다. 겨우 생각해낸 것이라고는 늘씬하고 하얀 엄마가 아닌 그을린 피부와 강렬한 인상의 아빠를 닮았다는 말이 어린 내게는 너무 가혹했을지도 모른다는 정도.


그럼에도 거스를 수 없는 섭리로 인해 나는 아빠를 무척이나 닮았다. 짙은 눈썹에 뚜렷한 이목구비, 조금 노란 피부. 낮은 목소리. 외적인 것뿐만 아니라 성향까지도 아빠를 쏙 닮았다. 쉽게 뽑히거나 흔들리지 않는 주관과 불의를 보면 생각보다 앞서는 행동, 용의 꼬리가 될 바에는 뱀의 머리가 되어야만 하는 성격, 한번 화가 났다 하면 불이 붙어버리는 눈빛. 이와는 반대로 눈물과 정이 많은 것까지도 닮았다.


그래, 나는 그 누구보다도 아빠의 딸이다.




닮은 구석을 안고 살아가면서 왜 우리는 더 멀어질까



아빠와 잦은 갈등을 나눠 가졌던 이유는 다름이 아닌 닮음에 있는 걸까? 이 물음의 시작은 3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30년 가까이 다녔던 직장에서 은퇴한 아빠는 돌연 타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노라고 선언했다.


한 지붕 아래에 아침을 깨우고 저녁을 닫는 우리 부녀의 삶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줄로만 알았지만, 아빠의 선언 이후로 우리는 짧은 시간의 비행을 사이에 두고서 서로 다른 날들을 보내게 되었다. 작은 채팅창으로 아침식사 여부와 달라진 헤어스타일을 주고받았지만 우리 사이에는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간격과 온도가 자리하기 시작했다.



긴 시간을 서로의 삶에 얽매이고 기대왔던 우리에게는 오래전부터 필요했을지도 모를 변화였지만 아직은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서로를 마주 할 때면 변한듯한 모습에 서운함을 느꼈고 괜한 다툼이 생기기도 했다. 갈등은 매일 함께 지내던 때보다도 더욱 날카롭고 깊은 골을 냈다.


그건 아마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공간의 틈 때문이었을 거다. 함께 머물 때는 자주 진동하며 포개지곤 했던 두 세계가 이제는 완전히 분리되어 버렸고, 점점 더 나이가 들어가는 아버지와 이제 더 자랄 데 없이 자란 딸에게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해졌기 때문일 거다.



변함없이 닮은 표정을 짓고 같은 말투를 뱉으면서 서로 다른 시간 속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닮은 구석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를 멀어지게 했다. 그러나 이건 나와 아버지에게서만 일어나는 서글픈 이별이 아니었다. 자연스러운 순리였다. 나라는 존재가 온전히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를 품었던 세계와 헤어져야 했다. 부모와 자식이라면 한번쯤 겪어야 하는 순리였다. 그 사실을 이해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그건 아마도 자식인 나뿐 아니라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는 멀어지는 연습 없이 멀어졌다. 이 또한 우리 부녀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쾅 닫힌 채 열리지 않는 문 앞을 서성이는 아버지


엄격한 어머니께 끝내 전하지 못한, 늦은 고민들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린


부모 혹은 자식을 향한 원망과 그리움



조금씩 다른 모습이지만 우리는 모두 이 서글픔을 어디선가 이미 맡아 보았고 그 언젠가 만져보게 될 것이다. 오랜 시간 지워지지 않는 짙은 부채감으로 우리를 따라 올 것이다. 부채감은 언제나 양방향이다. 자식으로서 느끼는 부모를 향한 부채감, 자식을 향한 부모의 부채감.


그 감정들은 이전보다 더 세심한 배려가 되어 관계를 굳게 만들어주기도 할 테지만, 도리어 관계를 무겁게 만들기도 할 것이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자연스러운 일에도 옅은 긴장과 의무감을 느끼게 하면서 말이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멀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제는 그 형체 없는 부채감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왔음을 느낀다. 그 알 수 없는 줄다리기로 서로를 당기고 밀어내기에는 아버지와 딸, 부모와 자식에게 허락된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모른 척하고만 싶었던 그 사실을 이제는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이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아버지, 당신을 내려놓기 위해서. 아버지로부터 스스로 멀어지는 연습을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 당신을 더 제대로 알아야만 했다. 우리가 멀어지는 것은 더욱 사랑하고 존중하기 위함이다. 그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프로젝트 <거울 같은 당신께 겨울 같은 우리가>는 출판사 문장과장면들의 기획자 가랑비메이커이자, 고준영의 막내딸 고애라를 시작으로 숱한 아버지와 자녀들이 함께 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자녀들은 아버지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남겨두었고 그것은 인터뷰와 설문이 되었다. 용기를 내어 오래된 기억을 꺼낸 20명의 자녀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아버지를 기록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당신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여전히 서툴고 오해투성이일지라도 그 모두가 우리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방식이라고 이해해줄 당신을 알기에, 우리는 마음껏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긴 세월 그늘로 비켜섰을 당신을 조명하는 이 페이지가 썩 마음에 드는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고준영의 딸, 고애라


2020년 새게절에서



- '닮은 구석을 안고 살아가면서 우리는 왜 더 멀어질까' 중에서 -




내 기억에는 없는데 아버지가 하도 얘기하셔서 마치 내 기억인 것처럼 박혀버린 사진이 하나 있다. 당신의 말에 따르면 나는 슈퍼맨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 가족의 첫 둥지는 바다가 보이는 작은 마을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이사를 하며 그곳을 떠나기 전까지 아버지는 10년간 필름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그곳을 떠난 이후로 사진을 찍지 않은 이유가 있냐고 물으니, 내가 머리가 크면서 차츰 외모에 관심을 갖게 됐고 사진 찍는 것을 피했다고 한다. 공부에도 방해가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카메라를 놓았다고 하셨다.



- '민이네 집 - 백상현의 아들, 백승민' 중에서 -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쩜 이렇게 어려운지. 모든 순간이 처음이라 생경하다. 해를 거듭할수록 훅훅 와닿는다. 어떤 날엔 꽉 잠긴 파우더 뚜껑을 따는 일조차 수월하지 않아서 시큰거리는 손목과 떨리는 손가락을 부여잡고 눈물을 왈칵 쏟아낸다. 그런 날엔 퇴근하자마자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서먹하고 어설픈 안부가 오가고 음성엔 언제 또 올 거냐는 아빠의 질문에 나는 기약이 없는 대답을 한다. 통화 끝에 그는 밥 굶지 말라고, 나는 술 많이 마시지 말라는 말로서 인사를 대신한다. 서로의 목소리를 통해 그 문장을 듣고 나면, 우리는 당분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집에서 나와 살기 시작하면서 아빠와 많이 소원해졌다.



- '수진 아빠, 그리고 후식 씨 - 박후식의 딸, 박수진' 중에서 -




딸 - 아빠가 되기 전에 꿈꾸었던 가장의 모습은 어땠어?



아빠 -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로 자식이 하고 싶다는 거 아무 걱정 없이 해줄 수 있는 부유한 부모가 되고 싶었지. 단란한 가정도 꿈 꿨지. 여행도 하고 외식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그런.


(가정 말고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었어?)


본보기가 될 만한 부모가 되고 싶었지. 하지만 막상 되고보니 딱히 내세울 것이 없네. 그래. 그냥 평범한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었어.



딸 - 처음 아버지가 되어 나를 보았을 때 기분이 어땠어?



아빠 - 가슴이 벅찼지. 더군다나 너희는 둘이라서.


내 자식이지만 너희 정말 예뻤어. 얼마나 예뻤는지 몰라. 처음에는 우선 손과 발을 먼저 확인하려고. 어디 아프거나 잘못된 곳은 없는지 확인하려고. 몸무게는 2.4킬로 2.5킬로였지.


태어난 시간도 정확히 기억해. 12시 4분과 5분 1분 차이로 태어난 거야. 너희 둘은 93년도 1월 20일. (그때 태어났어).



딸 - 아빠가 우리에게 가장 감동 받았던 순간은 언제야?



아빠 - 언니랑 너 둘 다 대학을 붙었을 때지. 특히 너는 (재수를 하느라) 더 힘든 시간을 보냈으니까. 재수생 시절의 너를 아빠는 다시 봤어. 상당히 의지가 강하다는 걸 느꼈지.


네 언니도 마찬가지고. 대학 가서 장학금 받으려고 밤새도록 공부하고 결국에는 단대 수석도 하고.



- '당신을 대신하여 내가 묻고 당신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나의 아버지가 답하다' 중에서 -



[저작권자ⓒ 사회가치 공유 언론-소셜밸류.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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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밸류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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