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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따스한 사람들의 이야기

김미진 기자 / 기사승인 : 2020-04-01 23: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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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석영


책 소개


[고양이가 되고 싶어]는 석영 작가의 단편 소설이다.


책은 언제 어디서든 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마법 같은 존재, 고양이와 따스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주머니 속에 쏙 들어갈 만큼 작고 가볍게 제작되었다.


석영 작가의 단편 소설 [고양이가 되고 싶어]는 따뜻함이 필요한 이들에게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출처: 석영 작가 블로그]

저자 소개


저자: 석영


자리 '석'에 비칠 '영'으로 저의 자리가 빛이 나길 바라며 만들어주신 이름입니다만, 저 하나보다는 주변을, 동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리를 비추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목차


총 82페이지


본문


친구 집에서 마시는 술이 아니면 마시질 못했다. 그래서 자연스레 술을 접할 기회가 없었고, 사실 맛도 잘 몰랐다. 진희 앞에서는 조금 어른인 척 해보고 싶었는데 완전히 실패해버렸다.


"방송에서 봤는데, 거품이 이렇게 많으면 욕먹던데."


"야야, 괜찮아. 너 못 마실까 봐 일부러 그런 거야."


"뭐래."


"아, 그래. 나 잘 모른다. 몰라. 아무튼 짠해, 짠~!"



컵이 부딪쳤다. 부딪히지 않고, 부딪쳤다. 내색하지 않던 진희도 피식 웃으며 잔에 힘을 실었다. 꼴깍꼴깍. 두 잔을 마실 때 즈음, 민우는 빨개진 얼굴을 하고는 물었다.


"진희야. 너 정말 재수할 거냐?"


"응. 해야지. 왜?"


"그렇구나. 아냐. 그냥 궁금해서."


"어때? 할만해? 경험자로서 조언 좀 해봐. 재수 왕~"


"아이씨. 또 까분다."


"틀린 말도 아니구만, 뭘 안 그래?"


진희는 키득거리다가 남은 잔을 비운다. 그러고는 빈 잔을 빤히 바라본다.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몇 분을 그렇게 잔만 쳐다본다. 민우는 익숙한 눈빛으로 진희를 보면서 생각한다.


'또 저러네.'


작년 여름부터 진희를 보았던 민우에게는 익숙한 상황이었다. 말을 하다가도 멈춰서 몇 분 동안 아무 말이 없는 진희의 모습. 오후 1시에 학원에 오면 꼭 그러고 있었다. 동갑내기들은 그런 모습에 거리를 두었지만, 민우는 한발 다가갔고 그 덕분에 하루에도 몇 번은 그녀의 사색을 지켜보는 특권(?)이 생겼다. 진희는 그때가 되면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는다. 이유를 물을 때면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아무 생각하기 싫을 때가 있잖아. 가끔씩, 어떤 날에는 자주 그런 시간이 필요해. 나는."


마음이 이상한 게 아닌가, 걱정되었지만 민우는 그냥 지켜봤다. 그 시간 동안 휴대폰의 알림이 울리든, 해야 할 일이 있든 신경 쓰지 않고 옆에 있었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 18 페이지 중에서 -


"도대체 어디에 있는거야."


민우는 중얼거리며 공원 한 가운데에 털썩 주저앉았다. 상실감. 무력감. 그런 건 아직 섣부른 감각이라고 느꼈지만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무 말도 없이 떠나버릴 리가 없는데. 얼마 전에 페이스북 메시지로도 면회도 오겠다고 했고.'


민우는 점점 부정적인 생각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범죄에 연루된 건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납치, 협박, 성희롱, 살인. 젊은 여성에게 위협적인 상황의 노출은 일상다반사니까. 둘이 함께 다닐 때를 생각해보면 진희는 조심하고 있었다. 술을 좋아하면서,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고, 밤늦게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하지만 넘기려고도 않았다. 인간관계도 금방 맺을 만큼 상냥하다가도 본인에게 해를 가할 것 같으면 가차 없이 끊어냈었다.


'그래. 그런 일은 없었을 거야. 조심성이 많았으니까.'


그래도 마음 한쪽이 불편하고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조심한다고 무조건 안전하리라는 법은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안전운전을 하는 사람이라도 다른 차의 과실로 사고가 날 수 있으니 안심할 수는 없었다. 연락이 오기 전까지 최대한 수소문해보는 수밖에. 그래야 이런 불편한 상상을 잠시라도 밀어낼 수 있을 테니까.


학원 단톡방, 민우가 알고 있는 진희의 지인들에게 일일이 연락했다. 진희의 SNS에도 들어가 봤다. 게시물을 일절 올리지 않았고, 친구를 몇 명 추가하지 않아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얼마 없었다. '좋아요'를 누른 흔적들은 대부분 동물 사진뿐. 고양이 사진이 올라오는 페이지를 구독하고 있던 모양이다.


'진희답네.'



민우는 자신도 모르게 웃으며 지난 여름날을 떠올렸다. 진희는 조용히 걷다가도 고양이를 보면 걸음을 멈추고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는 주머니 속에 있는 고양이 간식을 꺼내며 자리에 앉았다. 몇 번을 실패하다가 끝내 먹이를 주는데에 성공하면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그 모습이 좋아 민우도 고양이를 볼 때마다 진희에게 연락하고, 사진을 찍었다. 길고양이들에게 전혀 호감이 없었던 민우는 점점 빠져들고 말았다. 복슬복슬한 털, 도톰한 발, 하품하는 입, 유연한 몸놀림까지. 고양이가 좋은 이유가 점점 늘어났다.


민우는 문득 떠오른 추억에 피식 울었다. 아까 공원에 오자마자 봤던 고양이가 생각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고양이는 그새 자취를 감췄다.


'나도 참. 고양이 찾을 때가 아닌데.'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고, 아직 답장도 오질 않았다. 어둑어둑한 공원을 돌아다니기보다 내일 더 멀리 찾으러 나가보기로 마음을 먹고 걸음을 떼려는데 발목에 이상한 감촉이 느껴진다. 딱딱한 듯 말랑하고 날카로우면서 부드러운 느낌. 고양이의 발이었다.


- 40페이지 중에서 -


"야옹"


"뭐야, 삼색이잖아. 진짜 오랜만이다."


민우는 반가운 얼굴을 하고는 고양이의 이마를 만진다. '삼색이'는 색이 세 개인 고양이에게 붙여지는 별칭인데, 진희와 민우가 함께 있을 때 가장 많이 마주했던 고양이였다. 대학 생활과 군입대로 좀처럼 집에 올 수 없었던 탓에 둘의 조우는 꽤 오랜만이었다.


"나 오늘은 먹을 게 없는데, 어쩌지?"


"야옹, 야옹"


삼색은 자리에 앉은 민우에게 다가와 몸을 붙이고는 울기 시작했다. 민우는 그 애교에 못 이겨 주변에 있는 편의점으로 가 츄를 사 왔다. 수풀에 숨어있던 삼색이는 슬그머니 민우의 앞으로 다가와 식사를 시작했다.


"배가 많이 고팠구나. 잘 먹네."


주저하지 않고 금세 식사를 끝낸 삼색은 기지개를 한 번 켜고 홀연히 사라졌다. 민우는 그 당당하고도 도도한 뒷모습에 피식 웃고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진희를 봤다는 연락은 없었고, 진희에게 보낸 메시지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허전한 마음으로 돌아온 민우는 휴대폰을 집어넣고 집으로 돌아갔다.


혜진도 별 소득이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민우도 진희 소재를 몰랐다는 것에 낙담한 탓일까. 원장실에 남아있는 짐을 살펴보는 것 이외에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전화번호와 이메일. 진희와 소통할 수 있는 창구는 오로지 두 개 뿐이었다. 그나마 비어있는 프로필 사진 뿐인 페이스북 계정을 찾은 게 유일한 성과. 찾을 당시에는 너무 기뻐했지만, 친구 신청을 받기는커녕 메시지에 답장도 없었다. 그녀가 어디를 갈지 추측할 수 있는 장소도 얼마 없었다. 이토록 모르면서 안심했다니. 보호자라고 자만했다니. 긴 한숨을 푹 쉬었다.


- 46페이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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