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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고 믿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실은 오해하기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김미진 기자 / 기사승인 : 2020-03-13 23: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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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저자 오수영

책 소개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는 오수영 작가의 에세이다.


다음은 책에 수록된 소개 글이다.


「안다고 믿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실은 오해하기 시작하는지도 모릅니다.


안다고 믿었던 부분들은 단지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서로에게 덧씌운 환영에 가까웠습니다.


확신보다는 여운을 간직할 수 있다면,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서로의 곁에 조금 더 머무를 수 있게 될까요.


언젠가는 우리가 서로를 오래도록 궁금해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서로를 알면서도 서로에 대해 끊임없이 무지한 사람들처럼 그렇게, 우리 얼마나 함께 이 삶을,」


오수영 작가의 에세이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는 그의 성숙한 고찰이 담긴 단상들로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과 깊은 성찰을 안겨다 줄 것이다.



출처: 페브레로
출처: 페브레로


저자 소개



저자: 오수영





목차



총 165페이지





본문



안다고 믿었던 것들에 대한 확신이 사라집니다. 오히려, 모른다고 믿었던 것들이 나를 끈질기게 지켜주고 있습니다.



- 본문 중에서 -




정서적으로 교감이 가능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무엇보다 마음이 먼저 따뜻하게 데워진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감성을 당신도 똑같이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인연을 더할 나위 없이 값진 축복으로 만들어준다. 게다가 그 온기의 기억은 마음에 고스란히 남아 다가올 인연들을 만나는 것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이를테면 마음의 '끓는 점'이라는 게 생기는 것이다. 지나간 인연과 나눴던 온기보다 따뜻하지 못하다면 마음은 좀처럼 끓어오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따뜻한 사람과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유난히 이별에 아파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외모나 재력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쉽게 매료되는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따뜻하고 정서적인 교감이 가능한 사람은 우리의 마음을 먼저 녹인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한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을뿐더러, 그런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확률은 너무도 적기 때문이다. 온기의 기억은 잔영으로도 남아 오래도록 우리 곁을 맴돌며, 무엇이 진실 된 마음인지 가려낼 수 있도록 돕는다.



사람들은 사랑하다 이별하면 그것으로 인연의 끈이 완전히 끊어져 이제 자신은 지나간 인연과 전혀 상관없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줄 알지만, 실은 인연은 순간뿐이라는 착각과는 달리 비로소 영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에 관여하게 된다. 그런 것들은 우리의 여생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삶 자체를 끌어안는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무엇이라고 불렀던가.



- '영원에 관여하는' 중에서 -




인스타그램을 부유하는 우리


제 3의 관계, 이미지에 매혹 당한 사람들



우리는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만나지 않는다. 언제나 서로라는 존재의 곁을 맴돌지만 마주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의 실명을 모르고 서로의 민낯을 모른다. 우리는 서로가 꾸며놓은 각자의 방을 구경하며 그것이 서로라는 존재의 느낌이라 믿고, 그것이 바로 서로의 본모습의 일부라고 믿는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미지는 자신을 대변해 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가 정성껏 꾸며놓은 이미지에 쫓기듯 빠져들어, 오래도록 닫혀있던 자신의 방문을 열고, 한 발짝 다가서는 용기를 낸다. 다른 사람의 방문을 두드리기도 하고, 아니면 창문 너머로 몰래 방안을 훔쳐보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가끔은 방안에 배설물을 던지기도 하고, 그런데 아무렴, 어차피 우리는 서로를 모르니까 말이다.



현실 속의 사람들은 자신의 방문을 좀처럼 열려하지 않는데 온라인 속 가상의 이미지를 향한 마음의 문은 느낌만으로 열릴 수 있다니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우리는 숱한 이미지와 낱말들을 공유하고, 때로는 현실에서 만나 서로의 상반되는 모습을 들키며 신인류의 관계에 적응해간다. 우리는 언제나처럼 서로에게 스치듯 머물고, 머물 듯 스치고야 만다. 그러다가 가끔씩은 내가 온라인에서 바라보고 있는, 이렇게 매력적인 당신의 이미지가 정말 당신일까 생각한다.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어찌됐건 우리는 서로 적잖이 연결되어 있는 이미지들이기 때문이다. 만난 적 없지만 만났던 것 같아서, 이별한 적 없지만 이별했던 것 같아서 이곳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쉽게 떠나지 못한다.



- '만남 없는 세대' 중에서 -




계절이 바뀌는 그 길목을 우리는 환절기라고 부른다. 아침과 밤의 온도 차가 심해져서 사람들의 면역력은 한층 더 떨어지고, 그 덕에 병원은 온통 감기 환자들로 북적인다. 나는 이 길목을 지날 때마다 앓곤 한다. 유난히 온도의 변화에 취약한 나로서는 환절기 몸살을 피해간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이렇게라도 앓아서, 좀 며칠 간 마음 편히 쉬고 싶은 요량인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꾸준히 운동을 하고, 섭생을 중요시 여겨도 환절기라는 길목에만 들어서면 몽땅 다 헛수고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럴 때면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강박적으로 건강에 신경을 썼는지, 온통 허무함만이 남겨질 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는 계절이 바뀔 때만 환절기 몸살을 앓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의 인연이 떠나가고, 또 다음의 인연이 찾아오기 전의 그 비릿하고, 쓸쓸한 길목 또한 관계의 환절기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어제와 오늘의 감정의 온도 차가 극단적으로 달라지는 상황에 놓인 우리는, 그것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고, 오래도록 앓고야 만다. 평소에 서로 얼마나 꾸준히 사랑을 표현하고, 확인했든지 간에, 마침내 영문도 모른 채 이 환절기에 들어선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들의 지나간 계절을 황망히 바라볼 뿐이다. 하지만 이 관계의 환절기라는 길목만이 우리를 한 층 더 성숙하게 만들어준다고 믿는다.



- '환절기' 중에서 -




당신이라는 이미지는, 그러니까 내가 당신이라고 믿었던 당신의 모습은, 결국 내가 내 마음대로 나의 내면에 만들어 놓은 나의 상상력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나라는 사람의 이미지도 당신의 내면에 그런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을 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이미지라는 것이 얼마나 변하기 쉬운지는 당신도 잘 알거라 생각합니다. 상황에 따라서 그리고 시기에 따라서 이미지는 너무도 쉽게 옷을 갈아입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속에 서로가 멋대로 만들어놓은 이미지의 불균형이 시작됐던 것이지요. 내가 알던 당신의 모습은 이제 없고, 당신이 알던 나의 모습도 이제 더 이상 없습니다.



우리가 대체 서로의 어떤 모습에 반했던 것이었고, 서로의 어떤 모습에 싫증이 나버렸던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지녔던 서로에 대한 상상력이 너무 지나쳤던 걸까요. 그렇다고 우리가 만약 서로에게 다른 모습을 봤었더라면, 그건 과연 서로의 진짜 모습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쩌면 사람들은 서로의 진짜 모습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상대방의 이미지가 자신이 원하는 모습에 가깝길 바라는 마음에 온 정신과 마음을 소모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서로를 잠시나마 알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서로를 알았었다는 말보다는 서로에게 우리가 뭘 원했었는지를 알게 됐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몰랐던 당신과, 몰랐던 나. 우리 이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마음속에 새로운 사람의 이미지들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겠지요. 부디 우리 지금은 그때보다 자신과, 그리고 상대방에게 조금 더 솔직한 이미지로 남겨지길 바랍니다.



- '몰랐던 당신과 몰랐던 나' 중에서 -




사람이 사람에게 첫눈에 반하는 순간은 정말이지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마저도 녹아내리게 한다. 하루는 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려 줄을 서있었는데, 이미 주문을 마치고 자신의 음료를 기다리고 있는 한 남자 대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수수한 옷차림에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는 걸 보니 카페에서 공부를 하려는 듯했다. 그런데 유독 나의 이목을 끈 건 다른 사람들은 모두 핸드폰을 바라보며 자신이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고 있는 반면에 이 학생은 오로지 저 너머에서 커피를 만들고 있는 또래의 여자아이의 뒷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아무런 이유 없이 단지 커피를 기다리는 자신만의 독특한 습관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남학생의 눈빛이 그런 종류의 평범함을 담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표졍은 약간 멍하고, 입은 살짝 헤- 벌어져서 엷은 미소를 띈 모습이 조금은 어리숙해 보였지만 눈빛만은 지금 이 공간의 어떤 사람보다 반짝이며 생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제 그녀가 커피를 들고 무덤덤하게 그에게 걸어오기 시작한다. 그녀가 커피를 건네는 순간에도 그는 꿈속을 헤매는 사람처럼 그저 멍하니 그녀의 얼굴만을 바라볼 뿐이다. 커피를 받고도 자리를 뜨지 않는 그가 의아스러웠는지 그녀가 묻는다. 혹시 더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이제야 꿈에서 깨어난 그가 말한다. 아,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자신의 일을 위해 돌아서고, 그는 테이블로 걸어가면서도 그녀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지 자꾸만 혼자서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웃는다. 나는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속으로 괜한 참견이 하고 싶어진다. 조금만 용기를 내서 아무런 말이라도 걸면 될 것을! 첫눈에 반한 사람을 앞에 두고 뭘 그렇게 망설이는 거야. 하지만 나는 곧 내가 나의 그녀를 처음 만났던 순간이 생각나 너무도 부끄러워졌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 어떤 어린 남자아이보다 더 어리숙했다면 어리숙했지 별반 다를 게 없던 것이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지금 내가 해야 할 일도 잊은 채로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쩌다 그녀가 나를 의식하고 슬쩍 쳐다 볼 때면 나는 바보처럼 고개를 돌리고 딴청을 피웠다. 언젠가 반드시 말을 걸어야지.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계절도 서서히 바뀌었다. 다행히 그곳은 그녀의 일터였기 때문에 내가 그녀를 찾아오면 언제든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었다. 그렇다고 그동안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았던 건 아닌데, 지금의 그녀는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말 한번 거는 게 그렇게 어려웠냐며 나를 끈질기게 놀려댄다. 입장을 바꿔 생각을 해봐도 나도 내가 바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그 단 한 번의 말을 걸기 위한 수많은 망설임과 떨림의 시도들을 모른다.



- '짧은 연애 소설' 중에서 -




돌이켜보면 이십대 때 나를 이끌어줬던 건 내면에 잠겨있던 에너지의 분출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나는 참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인데, 그것만이 내가 가진 녹슬지 않는 무기였고, 그것만을 믿고 이십대를 관통했다. 정적인 시절, 나는 좀처럼 사람들의 흥미에 이끌려 다니지 않았다. 여행이나 레저스포츠 같은 청춘이라면 꼭 해봐야만 한다는 것에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다만 나는 예술 작품들로 내면 깊숙이 침잠하는 것에는 한 번 물면 쉽사리 놓지 않는 삽살개처럼 독하게 달려들었다. 성실하게 작품들을 감상했고, 성실하게 습작을 했으며, 그리고 또 성실하게 원하는 공부를 하며 하루를 살아갔다. 소모적이라고 생각되는 모임 같은 자리에는 절대로 참석하지 않았고, 오로지 아주 소수의 오래된 친구들과만 인연을 이어갔다. 나의 이십대는 소란스럽지 않았다. 나의 방에는 정적이 흘렀지만 나는 그 시절을 요동치는 정적이라고 감히 포장해말하고 싶다. 끼니를 거를 만큼 형편이 어려웠던 것은 아니지만 끼니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몰입할 수 있는 취미와 일을 발견했다는 환희에, 묶여있던 내면의 모든 열정의 고삐가 풀렸던 것이다.



지금 나는 어느덧 삼십대 중반을 향하고 있다. 지금 이 문장을 쓰면서도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만큼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절감한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은 이십대와는 달리 분출되려는 에너지를 다스리는 힘이다. 그것은 아마 밥벌이와 가장 커다란 연관이 있을 것이다. 나는 사실 내가 좋아하는 것에만 지독하게 성실한 편인데, 그것이 아니라면 녹슬지 않는다고 믿었던 성실함도 서서히 나태함이 되어 갈 뿐이다. 나는 여전히 예술작품들에 흠뻑 취해있고, 그것에 대한 취향도 점점 확고해지고 있지만, 어쩐지 너무 적당히만 살아가고 있다고나 할까. 나는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는데 자꾸만 누군가 뒤에서 나를 밧줄로 잡아끄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처럼 내 삶은 여전히 소란스럽지 않고, 정적이지만 이십대 때와는 달리 단지 정적이기만 하다. 극한의 적요에서 퍼져 나오는 그 어떤 조용한 울림도 느낄 수가 없다. 삶은 분명 안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이것은 분명 살아가는 게 아닌 살아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끊임없이 변하는 지평 위에 나는 서 있다. 영원이라 믿었던 것들도 세월과 현실 앞에서는 그 모습이 변하려 한다. 변화와 타협 앞에서는 자신과의 소리 없는 싸움만이 지루하게 펼쳐진다. 뜨겁던 열망과 열정, 그리고 온전히 내 것이었던 정신과 인식조차 조금씩 휩쓸리려 한다. 나는 아마도 지금까지보다 더 빠르게 세월의 등을 타고 달려갈 것이다. 눈이 침침해지는 날이 곧 찾아올 것이고, 날씨가 나의 관절에 관여하는 날들도 어느새 성큼 다가올 것이다. 그때의 나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이미 녹슬었을 지라도 지금의 성실함을 부디 간직해주길 소망한다. 그래서 그때도 그것이 나의 유일한 무기가 되어 나의 여생을 이끌어갈 수 있게 되길 바라고, 지금 취미로 삼고 있는 일들이 그때의 나에게 더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되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부디 어리석은 유혹과 선택에서 해방된 혜안을 가진 사람으로,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조용히 살아갈 수만 있다면 더는 아쉬울 것 없는 삶이겠다.



- '녹슬지라도 영원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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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밸류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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