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신한-하나은행·미래에셋-신한투자 각각 1위 주장
[소셜밸류=소민영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퇴직연금의 낮은 수익률을 문제 삼으며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언급한 뒤, 퇴직연금 제도 개편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지난 2월 노사정 공동선언을 통해 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와 퇴직급여 사외적립 의무화에 뜻을 모았고, 3월에는 후속조치 방안을 내놓으며 기금형 도입, 단계적 의무화, 연내 법 개정 추진을 공식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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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AI 생성 이미지(ChatGPT) |
현 정부 들어 퇴직연금의 낮은 수익률과 방치된 운용 구조를 손보겠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퇴직연금을 단순한 금융상품이 아니라 국민의 노후소득을 떠받치는 핵심 자산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처럼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고민에 빠져 있지만, 정작 금융권 현장에서는 ‘1위’ 마케팅 경쟁에만 매몰된 모습이다. 시장 규모가 커지고 퇴금연금간 이동이 가능해지다 보니 금융사간 경쟁이 과열 양상을 띠고 있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의 혼란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 500조원 돌파 눈앞…커질수록 복잡해진 ‘1위’ 기준
27일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4년 우리나라 퇴직연금 투자 백서’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은 431조7000억원으로 제도 도입 이후 처음 40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는 적립금이 496조8021억원까지 불어나며 5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펀드·ETF 등 실적배당형 상품 투자금이 크게 늘며, 퇴직연금 시장이 원금보장형 저축 중심에서 투자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시장도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상품별로는 DB형(확정급여형)이 여전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가입자가 직접 운용하는 DC형(확정기여형)과 IRP의 성장세가 빨라지면서 은행·보험·증권 간 경쟁 구도도 더 복잡해지고 있다.
이 거대한 시장에서 금융사들이 모두 ‘1위’를 외치면서 소비자의 선택하는데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삼성생명은 DC형 1년 수익률 1위를, 신한은행은 전체 적립금 1위를, 하나은행은 은행권 적립금 증가액 1위를, 미래에셋증권은 1분기 신규 유입액과 DC·IRP 적립금 1위를, 신한투자증권은 증권업권 DC·IRP 수익률 1위를 각각 내세우고 있다.
이들 업체는 적립금, 증가액, 단기 수익률, 중장기 수익률, 제도별 실적을 제각각 떼어내 ‘1등’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셈이다. 고객 입장에서는 어떤 기준을 믿어야 하는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적립금이 가장 많은 곳이 좋은지, 최근 1년 수익률이 높은 곳이 좋은지, 분기 유입액이 많은 곳이 좋은지, DC·IRP처럼 특정 제도에서 강한 곳이 좋은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게 고객들의 목소리다.
퇴직연금이 물건을 고르듯 선택했다가 바꾸면 되는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퇴직금이 어떻게 운용되고, 장기적으로 어떻게 불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는지와 직결되는 노후자산이다. 금융사들이 각자에게 유리한 숫자만 골라 앞세우는 방식은 정보를 제공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비교 기준을 흐리게 만들어 가입자의 판단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각 사는 “운용 역량” 강조…고객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비교
금융사들도 각자 내세우는 ‘1위’ 지표에 대해 나름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다만 이 설명 역시 제도별·업권별 특성이 달라 일반 가입자가 한눈에 비교하기는 쉽지 않다.
신한투자증권 관계자는 “퇴직연금 공시 자체가 DC와 IRP로 나뉘어 있다 보니 각 사업자가 자신들이 1위인 부분을 주로 알리려는 경향이 있다”며 “하나의 항목에서라도 1위를 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이를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한투자증권은 DC·IRP 시장에서 고객이 직접 운용하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신한투자증권 관계자는 “DC형은 고객이 직접 매매하는 구조인 만큼 좋은 수익률이 나올 수 있도록 가이드를 제공하는 것이 사업자의 역할”이라며 “수수료 부담 완화, ETF 선택지 확대, 모델 포트폴리오와 리서치 제공 등이 고객 수익률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생명은 안정성과 제도별 균형을 강조했다. 삼성생명은 “DB·DC·IRP 전 제도에 걸쳐 고른 성과를 내고 있으며, 각 제도별 특성에 맞춰 고객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DB형에서는 퇴직급여 지급 보장을 위한 운용 안정성이 중요하고, DC·IRP 영역에서는 상품 라인업과 고객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신규 유입액과 DC·IRP 적립금 규모를 장기 운용 역량의 결과로 보고 있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신규 유입액 1위는 단순한 규모 경쟁을 넘어 고객들이 장기 자산을 맡길 수 있는 곳으로 선택했다는 의미”라며 “DC·IRP 적립금 규모는 장기 운용 경험과 데이터 축적, 자산배분 및 리스크 관리 역량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축 중심이 아닌 투자 중심으로 퇴직연금 시장의 패러다임을 선도해 왔다”며 글로벌 분산투자, 자산배분 전략, 로보어드바이저, 모델포트폴리오 등 운용 솔루션을 경쟁력으로 제시했다.
결국 각 사의 설명을 종합하면 삼성생명은 안정성과 제도별 균형, 미래에셋증권은 투자 중심 운용 인프라와 규모의 경험, 신한투자증권은 ETF 직접 매매와 운용 가이드를 각각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차이가 고객에게 충분히 설명되기보다 ‘1위’라는 짧은 문구로 압축돼 전달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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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직연금 비교/사진=AI 생성 이미지(ChatGPT) |
◆ 중요한 것은 ‘순위’보다 지속 가능한 운용 능력
퇴직연금 가입자에게 중요한 것은 특정 시점의 순위 하나가 아니다. 수익률이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 수수료는 적정한지, 상품 설명은 충분한지, 시장 변동기에 리스크 관리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고객이 실제로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는 운용 환경이 갖춰져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정부의 퇴직연금사업자 평가 방향도 단순한 외형 경쟁과 거리가 있다. 고용노동부는 퇴직연금사업자 평가에서 운용상품 역량, 수익률 성과, 조직·서비스 역량, 수수료 효율성 등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올해는 디폴트옵션 승인상품 평가까지 처음 시행할 예정이다. 이는 가입자에게 필요한 경쟁력이 ‘이번 분기 누가 더 많이 끌어모았느냐’가 아니라 장기 운용 능력, 비용 효율성, 설명 책임, 시스템 안정성이라는 뜻이다.
시장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원금보장형 저축 중심이던 퇴직연금 시장은 펀드·ETF 등 실적배당형 상품 중심으로 무게가 이동하고 있다. DB 중심의 보험사 우위 구도도 DC·IRP 확대로 흔들리고, 은행과 증권사의 존재감도 커지고 있다.
앞으로 금융권은 저마다의 ‘1위’ 지표를 내세우기보다, 소비자가 실제로 알고 싶어 하는 정보를 얼마나 투명하게 제공하고 노후자산을 얼마나 오래, 책임 있게 관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게 시장의 지적이다. 그래야 소비자와의 신뢰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금융권도 ‘제각각 1위’라는 구호를 넘어 비교 가능한 정보와 검증 가능한 장기 성과로 경쟁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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