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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던질 수 있는 용기

이진성 / 기사승인 : 2020-02-26 18: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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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네프의 연인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딱 머릿속에서 바로 드는 생각은, ‘와, 부럽다’였다. 우리 시대에도 과연 이 정도의 강도와 깊이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은 내가 느끼기에 사랑의 가장 순수한 상태를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순수 결정체의 사랑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낭만적 사랑을 항상 꿈꿔왔던 나에게 이 문제는 개인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 이유를 추적하기에 앞서 한 가지 비유를 쓰고 싶은데,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하얀 새 원피스를 입고 나온 어떤 한 여성을 상상해보자. 그녀의 걸음걸이는 조심스럽다. 걸음을 헛디뎌 흙탕물이 옷에 튈 수도 있고, 지나가던 차에게 물세례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매우 부자유스럽고 불편해 보인다. 깨끗한 새 옷을 지키기 위해서는 주변에 너무나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다. 어쩌면 이런 날 새 옷을 입고 나온 자기 자신을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갑자기 트럭이 그녀 옆을 확 지나가면서 물세례를 한다. 그녀는 어떤 기분일까? 새 옷을 망쳤다는 짜증과 더러운 물이 온몸에 닿았다는 불쾌감, 주변 사람들의 시선, 이런 것들을 고려해보았을 때, 매우 기분이 안 좋은 상태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러한 가운데서 묘한 기분도 든다. 이상하게도 짜증스러움과 함께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왕 이렇게 옷을 다 버렸으니 더 이상 옷이 더럽혀질 것을 조심하면서 걷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때문일까? 그녀는 그 속에서 묘한 자유를 느낀다. 더 이상 신경 쓸게 없어진 그녀는 어쩌면 우산을 던져 버리고 빗속을 걸어갈지도 모르겠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나오는 두 사람의 사랑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이 우산을 던져버린 여자의 이야기는 매우 소중하다. 그들의 사랑은 마치 우산을 던져버리는 그 자유로움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가지고 산다. 집, 옷, 자동차, 시계, 신발 등등. 이러한 것들은 우리에게 어떤 편리를 준다. 이것들이 없으면 어쩌면 불편해서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한 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러한 것들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기도 하지만 때때로 우리를 제약하는 무거운 족쇄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집이 있고 회사가 있고 가족이 있으면 좋긴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집이 있고 회사가 있고, 가족이 있어서 우리는 자유롭게 어디론가 떠나지도 못한다. 알렉스와 미셸이 갑자기 그냥 바다가 보고 싶을 때 주저 없이 함께 떠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는 가진 게 없었기 때문이다. 가진 게 많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지켜야 할게 많다는 말과 같다. 지켜야 할게 많으면 우린 거기에 발이 묶여 움직이기 힘들어진다. 마치 비 오는 날 새 옷을 입고 나온 그 여인처럼 말이다. 놀랍게도 이들이 이렇게 순수하고 자유로운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노숙자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매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며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물론 사랑을 감당하기에 너무나 미숙한 서로였기에 그 과정에서 서로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은 ‘사랑’이라는 것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이들만큼 강한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가진 것들을 너무 많이 사랑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와 내 것에 대한 사랑은 때때로 상대방에 대한 사랑을 갉아먹는다. 내 것을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내 앞의 상대방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나와 내 것을 지키는 만큼 우리는 그 사람을 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들은 자신의 모든 사랑을 상대방에게 줄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그들에게 가진 것 이라고는 상대방밖에는 없는 것이다. 누더기 같은 옷을 입은 채 서로 기대어 안겨있는 이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가진 것 없는 두 사람이 자신의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내 맡기고 있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백미는 역시 폭죽이 터지는 가운데 다리 위에서 자유롭게 춤추는 장면이다. 물론 이 부분을 그냥 술 마시고 기분이 좋아서 마음 가는 대로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 볼 수 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이것은 거의 예술이다. 어떤 현대무용수의 몸 짓 보다도 자유로웠고, 아름다웠다. 미셸은 이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 현대무용을 배웠음에 틀림없다. 그게 아니라면 사실 그게 더욱 놀라운 일이 되겠지만






(심지어 알렉스는 옷도 잘 안 입고 나온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자유롭게 사랑을 한다. 그들에겐 거칠 것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두 사람이 사랑했기 때문에 다른 것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사랑의 놀라운 특징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러한 것 아닐까? 내 앞의 상대방 말고 다른 일체의 모든 것들에 무관심해지는 것, 오히려 내가 가지고 있던 것들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그러한 상태. 과거에 우리 조상들 중에는 왕위도 버리고 사랑을 했던 사람들도 있다. 사랑을 하면 왕위도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게 되는 법이다. 그만큼 강렬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병적이라면 병적인 상태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병적이고 이상한 만큼 우리에게 황홀감과 행복감을 주는 것도 우린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두 사람 중에는 알렉스가 좀 더 이러한 사랑에 근접했던 것 같다. 둘은 언제까지나 이렇게 노숙자로 살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수면제를 사람들이 마시는 차에 타고, 그들이 잠에 빠지면 지갑을 훔쳤다. 그렇게 몇 번 성공하여 꽤 큰돈을 벌게 되는데, 이때 알렉스는 왠지 모를 불행을 예감한다. 돈이 생기고, 그것으로 집을 사고, 옷을 사고하면 물론 편리는 하겠지만, 그렇게 가진 게 늘어가다 보면 어떤 안정적인 생활이 구축될 것이고, 그만큼 지켜야 할 것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전처럼 자유롭게 만나 사랑을 나눌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알렉스는 든 것이다. 그래서 몰래 돈 상자를 그녀의 스트레칭 동작 범위 안에 슬그머니 밀어 놓아 그녀가 스스로 돈을 다리 밑으로 버리게 만든다. 알렉스를 어떻게 보면 그녀에 대한 강렬한 소유욕을 가졌다 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만큼 사랑의 본질에 가깝게 다가가 느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알렉스를 ‘스토커’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겠다. 가수 10cm의 노래 ‘스토커’의 뮤직 비디오가 이 영화를 가지고 만들어져서 그런가? 그런데 영화 내용만 보았을 때, 그는 절대 스토커는 아니다. 그는 쪽지로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도 나를 사랑한다면 하늘이 하얗다고 말해달라고. 처음에 그녀의 그 대답을 듣지 못했을 때, 그는 힘들지만 마음을 접으려고 노력했었다. 그런데 그를 스토커라고 할 수 있을까? 그가 그녀에게 강요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물론 지하철에서 미셸이 과거의 사랑 줄리앙을 찾으려고 할 때, 방해한 것은 맞다. 하지만 이것을 가지고 그를 스토커라고 할 순 없다. 이것은 사랑에 미숙한 한 남자의 질투 어린 행동이라고 봐야 더 정확할 것 같다. 만약 스토커였다면 이런 식으로 하진 않았을 것이다. ‘또 그 자식 만나면 죽여 버리겠어.’라는 쪽지와 함께 죽은 새를 선물로 보낸다든지 이렇게 나왔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는 그녀의 행방을 찾는 아버지를 방해한다. 지하철 벽에 붙어있는 그녀의 사진들을 모두 불태우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몰래 차에 들어가 수북이 쌓여있는 포스터를 모두 차와 함께 불태운다. 결국 이것 때문에 나중에 감옥에 가게 된다. 여기서 그의 고뇌가 느껴진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가 행복하길 바란다. 그래서 점점 실명되어가는 그녀의 눈을 그도 100번이고 고쳐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아버지에게 다시 돌아가 버리면,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이다. 그는 거리에서 부랑하는 노숙자이니까. 육군 장교인 그녀의 아버지가 그를 허락할리 만무했다. 결국 라디오를 통해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가 자신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를 떠나게 된다. 마지막에 슬프게도 그녀는 “나는 너를 한 번도 진심으로 사랑한 적 없었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그녀의 저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녀가 그 누구보다 알렉스를 사랑했음을 우리는 안다. 그런데 알렉스가 그것을 모르겠는가? 사랑한다는 말은 몇 번 나오지 않지만, 알렉스는 그녀를 만나면서 분명히 그녀의 사랑을 느꼈고, 그랬기 때문에 행복했던 것이다. 거짓된 마음으로 어떻게 사랑을 하고 행복할 수 있을까? 가짜는 금방 그 정체가 드러나는 법이다. 그녀와 누구보다 가까웠던 알렉스가 그것을 몰랐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그녀가 저런 말을 하고 떠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 미셸은 떠나면서 다시 그에게 돌아올 수 없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강렬하게 사랑한 채로 떠나버리면 그는 그녀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고, 죽을 때까지 고통받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 정도의 강렬한 사랑이라면, 알렉스는 분명 미쳐버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잔인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조금이라도 빨리 잊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자신을 한 번도 사랑한 적 없었다는 이 말을 듣는 것은 분명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만큼 그녀를 잊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가 그녀를 욕하고 저주하며 더 빨리 잊어버릴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그가 쉽게 그녀의 그런 거짓말을 믿었을 리 없다. 누구보다도 그 사랑을 진실하게 느꼈던 사람에게 저런 종잇장보다도 가벼운 한마디 말이 힘이 있을까? 사랑에 있어서 말만큼이나 가벼운 것은 없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사랑보다 강력한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는 그녀의 진심을 알았고,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자신은 ‘잊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며 자신의 손을 총으로 쏴버리는데, 너무나 인상적이고 슬픈 장면이었다. 그는 온몸에 새겨진 그녀의 기억을 지울 수 없음을 알았지만, 손가락이 총알에 날아가 듯 자신의 온몸에 새겨진 그녀에 대한 기억도 날아가기를 바랐던 것 아닐까?








그렇게 그는 방화범으로 감옥에 가게 되는데, 어느 날 미셸이 찾아온다. 그녀는 이젠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얼굴이며 옷이며 너무나 말끔해 보였다. 그녀는 아직 그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그가 감방에서 나오는 날에 다시 예전처럼 퐁네프의 그 다리에서 만나자고 한다. 둘은 그렇게 예전처럼 자유롭게 다리 위를 거닐며 사랑을 나눈다. 한참을 서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데, 갑자기 미셸이 집에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그녀에게는 이제 지켜야 할 가정이 있었다. (정확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그녀의 눈을 고쳐준 병원 의사와 어떤 관계가 있어 보인다.) 과거 두 사람은 상대방을 제외한 모든 것은 거추장스럽게 여겼었다. 그런데 지금 미셸이 배신을 한 것이다. 지금 그녀 앞에 있는 자신보다 더 중요한 어떤 것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민감한 알렉스는 그것을 느꼈는지, 화를 내며 함께 다리 밑으로 빠져버린다. 이때 두 사람은 우연히 옆을 지나가는 배에 오르게 되는데, 어느 한 노 부부가 타고 있었다. 그들은 어디까지 가냐는 미셸의 질문에, “끝까지요.”라고 답한다. 결국 두 사람은 그 배를 타고 또 다른 새로운 곳으로 함께 가게 된다. 이렇게 영화는 마무리되는데, 우리는 물속에 빠진 후에 미셸의 태도가 급격하게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집에 가야 한다고 말하던 말끔한 미셸에서 예전의 길거리에서 목욕하던 미셸로 돌아온 것이다. 물속에 빠지는 장면은 명백한 상징이다. 앞에서 물세례를 받은 여인처럼의 이미지와 거의 같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물에 옷이 다 젖고 나서야 자유를 느낀 그 여인과 마찬가지로, 물속에 빠져 온몸이 젖은 후에야 미셸은 깨달은 것이다. 예전에 둘이 자유로웠고, 행복했었던 이유는 바로 가진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지금 자신이 둘의 행복을 망치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두 사람은 그렇게 또 자유롭게 어디론가 떠난다. 거기가 어딘지도 모른 채로 말이다. 거기가 어디든 무슨 상관인가? 지금 서로 함께 있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는 그 둘에게






사랑하고 있나요?



우산을 던져버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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