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치 공유 언론-소셜밸류 - [뮤즈 모임] ′방송′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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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즈 모임] '방송'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글들

권호 기자 / 기사승인 : 2020-04-06 09: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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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는 방송

*사진출처: [unsplash.com]








[뮤즈: 송진우 작가]

언바운드 크리에이션즈(Unbound Creations)가 개발한 ‘헤드라이너’라는 게임을 해봤다. ‘헤드라이너’는 뉴스와 기사 등을 통제하고 조작하며 사회, 가족 등에 영향을 미치는 인디 게임이다. [내가 뉴스를 통제한다면 어떻게 될까?]를 주제로 게임이 진행된다.

플레이어는 신문 편집장이 되어 언론의 위력과 책임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다. 자신이 직접 언론을 다룬다면 자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이고, 그러한 선택들은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까? 이 질문이 게임에 어떻게 녹아들었을지 호기심이 당긴다.

게임 리뷰를 시작하기 전에 미디어는 언론인들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지 알아보자. 대부분 언론인 캐릭터들은 이분화되어 등장한다. 진실을 알리기 위해 외압에도 꿋꿋이 맞서는 선한 언론인 캐릭터. 그리고 이와 반대로 진실을 은폐하거나 권력의 앞잡이가 되어 선전에 활용되는 캐릭터 역시 등장한다.

게임에서 뻗어 나왔으니 같은 게임을 사례를 들자면 스타크래프트 2: 자유의 날개에 나오는 케이트 록웰 기자와 도니 버밀리언 아나운서가 위에서 설명한 전형적 언론인 캐릭터의 좋은 예시이다.

주인공 짐 레이너는 부패한 테란 자치령의 황제인 악튜러스에 맞서 혁명을 일으키는데, 자치령의 유일한 방송국인 UNN은 뉴스를 통해 그를 테러리스트라 매도한다. 현장에 있는 케이트 록웰 기자가 외계 괴물인 저그의 공격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는 레이너 특공대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을 할 때면, 도니 버밀리언 앵커는 그녀의 말을 끊고 사실을 왜곡하는 데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준다.

나의 캐릭터도 이러한 유형을 따르게 될까? 굳이 나에게 선택의 자유가 주었는데 전형적인 유형의 언론인은 되지 말자고 마음먹었었다. 하지만 게임은 쉽지 않았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기사는 불가능했다. 내가 어느 한쪽에 호의적인 기사를 쓰면 항상 그 반대편이 피해를 봤다. 나 때문에 가수가 총에 맞아 죽었고. 딸은 감옥에 갔다. 기사를 읽은 사람들이 시위를 하거나, 건물에 불을 지르는 등, 내가 선택한 기사가 사회와 가족 등에 직접, 간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게임의 중요 의제중 하나는 유전자 개조 수술을 받은 개조인과 그렇지 않은 순수인과의 대립이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갤럭시아에는 다수의 시민이 이미 유전자 개조를 마쳤으며, 매년 이를 기념하는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문제는 일부 개조인들 사이에서 순수인을 열등하다며 차별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는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수자에 차별을 다루는 의제인 셈이다. 개조인이 순수인보다 무려 16%나 향상된 효율을 보인다는 헤드라인을 결제하면서 순수인들이 난리가 났다.

두 입장 중 중립을 지키면서도 언론인으로서 뉴스를 지속해 나가기가 어려웠다. 짧은 플레이 시간이지만 깊은 감정이입이 인상 깊었다. ‘헤드라이너’는 사회 어드벤처 게임으로 해당 장르에 관심이 있다면 해볼 것을 추천한다. pc플랫폼으로 플레이 가능하고 스팀에서 3,3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가 가능하다.



[뮤즈: 김다빈 작가]

[방송고]

"저기, 오빠는 어떻게 이 병원에 입원한...꺄악!"
초등학생쯤 돼 보이는 소녀는 가족과 함께 할머니의 문병을 왔다가, 창가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봉변을 당했다.
얼굴과 몸 여기저기에 붕대가 감겨 있던 환자는 다가온 소녀에게 물병을 집어던졌다.
"뭐 하는 짓이요?!"
흥분한 소녀의 부모가 화를 내며, 일어났지만 할머니는 그들을 만류하며 조용히 손녀를 불렀다.
울상이 된 손녀를 다독이는 가운데, 붕대 투성이의 환자가 돌아누웠다.
"어머님, 저 녀석 뭡니까? 아니 우리 수정이가 뭘 잘못했다고..."
"그냥 냅둬라. 불쌍한 아이야."
수군거리는 소리가 불쾌해서일까? 자리에서 일어난 그 붕대의 환자는 핏발 선 눈으로 수정의 가족들을 노려보고는 병실을 떠났다.

'어린 나이에 불쌍하게 됐어.'
'자동차 사고로 전신 화상 이래잖아?'
'어휴- 애도 어려 보이는데, 저렇게 흉이 지면....'

지나가는 사람마다 혀를 끌끌 차며, 동정심 속에 혐오감 가득한 시선을 그 뒤로 수년간 받아왔었다.
한때는 그도 우등생이었다, 장학금도 각종 시험 대회에서 언제나 상을 휩쓸었던 적이 있었다.
집안 역시도 남부럽지 않을 유복한 집안에서 왕자의 대우를 받으면서 살아갔었다.
이 모든 건 ‘그 사고’가 나기 직전이었다.
부모님은 그 자리에서 즉사, 본인은 20번이 넘는 대수술 끝에 몸 여기저기에 화마에 그슬린 자국이 남은 채로 방 안에서 고독한 3년을 보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신경 쓰지 마세요.”
“어렸을 때 공부를 아주 잘했잖니? 꿈이 의사라고 했고.”
“그런 얘기...해봤자, 안 가요. 학교...”
괴물이 된 자신이 나설 곳은 아무 데에도 없다고 생각한 그는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지 오래였다.
큰집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날이 서 있는 그의 반응에 큰어머니는 진심으로 그를 위로해 주며, 마음을 열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 단지 작은 상처일 뿐이잖니? 네가 마음을 열고 나선다면 우리가 엄마, 아빠만큼은 아니더라도 자립을 도와줄 수 있단다.”
“그래도....싫어요. 못해요.”
“휴우- 어쩔 수 없구나, 그럼 최소한 이 책이라도 놓고 갈 테니 한 번 읽어주지 않으련?”
벌써 몇 달째 그를 학교에 보내겠다고 설득하던 큰어머니가 떠난 자리에는 책 한 권만이 있었다.
그곳에 써져 있는 글자는 [한국방송통신고]라고 쓰여 있었다.
이름만 들어보면, 카메라맨이나 아나운서 등의 방송에 관련된 학교인가? 싶지만, 그건 아닌 듯했다.
“원격교육.... 방송과 통신으로만 강의를 듣고, 시험 역시도 원하는 곳에서 치를 수 있다고?”
밖에 나가 흉물스러운 화상 환자의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이곳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 안내 책자를 들여다보고 인터넷으로 확인을 하기 위해 홈페이지까지 들어가 봤다.
그곳에는 대략적인 학교의 학사제도와 함께,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된 그는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한국방송통신고의 학생회장 이수정이라고 합니다!]
BGM과 함께 학생회장이라는 여학생이 나와 방송통신고를 설명하는 가운데, 그는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이내 컴퓨터의 전원을 뽑아 버렸다.
“부질없는 짓이야....”
잠깐이지만 괜한 생각을 했다는 마음에 책자를 대충 던진 채 침대에 누워버렸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끝이 나고, 내일은 또 뭘 해야 할지 많은 생각이 드는 그날의 밤이었다.



[뮤즈: 조한제 작가]

나는 정신과 의사이다.
한 때 젊은 혈기에 찬란히 빛나는 배우를 희망하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흰색 가운을 입고 진료실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등장인물1일 뿐이다.

정신과 의사라고 항상 다이나믹한 일상을 살아오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증상에 따라 매뉴얼이 정해져 있고, 애초에 큰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 거의 없는 동네여서 보통은 한가하게 지내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출근을 하자마자 오늘은 특별한 환자분이 와 있다고 들었다.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그의 이름은 '이진실'이라는 분으로 흥미로운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분이었다.

일단 아무렇게나 기른 수염,
최소 일주일은 감지 않았을 것 같은 떡진 머리,
곳곳에 음식 묻은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티셔츠.

흡사 지금까지의 설명으로는 노숙자 같은 이미지가 풍기겠지만,
확신으로 가득 찬 초롱초롱한 눈빛,
어울리지 않게 있는 그의 고급스러운 시계와
잘 관리되어 있는 구두를 보면 단순한 하우스푸어는 아닌 듯한 짐작이 들었다.

하지만 범상치 않은 손님이란 것은 외양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첫마디는 이랬다.

"당신들 다 알아! 지금 이것도 방송으로 다 방송이지! 그래 정신과에 있는 내 모습이 우습겠지!"

신선한 인사말이었다.
공부할 때만 접해 봤던 '트루먼쇼 증후군'환자를 처음으로 접해보는 순간이었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영화 트루먼쇼에 기반한 증후군으로 본인의 주변 환경이 모두 거짓이고 남들에게 촬영되고 있다고 느끼는 정신질환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사춘기 이후에 사회생활을 겪게 되면서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간단한 한 때의 생채기 정도지만, 이 분의 증상은 그것을 넘어서는 듯했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나도 어렸을 때는 그런 상상을 해보고는 했으니깐. 근데 이 분은 한참 생각할 시기를 지나 어른이 다 된 상황에서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다. 난 의사니깐.

"흠...그거 심각한 일이군요. 일단 전 당신의 편입니다. 카메라로 의심되는 것들을 얘기해주시면 치워 드릴 테니 마음이 정리된다면 저와 단둘이만 알도록 상담을 진행하도록 하죠."

"당신도 믿을 수 없어!"

"그럼 저를 왜 찾아오셨나요?"

"이 세상이 모두 거짓부렁이니 마지막 가기 전에 유서 같은 것을 남기려고 하거든! 변호사도 어차피 거짓이니 의미 없고 최소한 당신은 진단을 이유로 나에 대한 이야기를 그나마 객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테니."

"자살을 시도하려는 이유를 혹시 여쭤봐도 될까요? 거짓된 세상에 대한 도피?"

"아니. 경고다! 이런 방송이 성공한다면 나 말고도 다른 방송이 이미 하고 있거나 앞으로도 기획이 되겠지. 난 내 분신자살을 통해 그런 인간의 존엄성을 위배하는 악의 고리를 끊어서 그런 피해자가 더 발생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흠...고급스러운 아이템을 소유할 만큼 이 분의 복장이나 관리가 꾀죄죄한 것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이전엔 고급 시계를 찰 만큼 잘 나가는 사람이었겠지만, 본인의 생활이 방송될 것이라고 인지하기 시작한 이후로 일부러 방송을 망치기로 작정을 한 듯하다.
그래서 최대한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다니지만 평상시 걷는 습관과 시계를 보는 습관들을 버릴 수는 없었겠지. 이해가 되었다.

"어떻게 이 세상이 이진실 씨를 촬영하는 방송이라고 알아차리게 된 거죠?"

"하, 드디어 의사 양반도 인정하는 건가. 그나마 말이 통하는 양반이군."

"그래. 눈치 빠른 내가 말을 해주지. 이 동네가 유독 CCTV가 많은 것은 알고 있지?"



[뮤즈: 심규락 작가]




[개화]

“아이 참, 춘향전에서도 그랬잖아. 무죄자 방송할 새! 무고한 자를 놓아주다!”
“그러니까 ‘방송’이란 말이 죄인을 풀어준다는 뜻 말고도, 이제는 ‘소식을 전하다’라는 말로도 쓰일 거 란다.”

나이가 두 자릿수를 갓 넘은 소녀 덕향이는 별빛 깃든 처마 아래서, 오라버니 택수에게 난데없는 주관적 언어학 개론을 펼치고 있었다.

“왜 그런 거야? 오라버니 학교서 그 헐벗은 할부지가 그렇게 하자디?”
“헐벗은 할부지가 아니라, 헐버트 선생님이라니까 덕향아. 그리고 방송 이란 말에 그리 뜻이 추가되는 건 옆 나라 일제 무선전신 국장 땜시야. 우리도 조선인으로서 계속 조선말을 가꾸고 더 키워나가야 해.”

훗날 독립이란 먼 미래를 맛본 자들이 으레 broadcast로 간주하는 단어 ‘방송’이 두 갈래의 의미를 갖게 되는 시기, 개화기(開化期)였다.

1870년대, 강화도의 이름을 띤 뭐시껭이 조약이 맺어졌다는 흉흉한 소식이 세상에 나온 뒤부터, 우리말이든 길거리 모습이든 아무튼 인간사 모든 것이 뒤엉켜 격동의 시간을 겪고 있었다. 마치 요 앞에서 순덕 아비가 허름한 수레를 앞에 두고, 휘기적 휘기적 만들어 파는 인기 만점 꿀타래의 꼴처럼.

“아, 골 아파. 본디 생긴 대로 그냥 말하면 되지. 이렇게 계속 바뀌면 어떻게 다 알아듣는담.”
“그걸 정리하고 알리는 게, 헐버트 선생님과 이 오라버니가 하는 일이자 소명이지.”

병아리 부리만큼 앞 입술을 살짝 내밀며 작은 짜증을 내는 덕향이었지만, 속으론 똑똑한 오라버니에 대한 존경심과 자랑스러움을 내색 안 하려 부단히 노력 중이었다. 택수는 조선의 최초 관립 학교인 육영공원(育英公院)에서 수학하고 있었다.

고종 23년(1886년), 민영익의 건의로 세워진 이 영재 육성소엔 주로 상류층 자제들만 입교했으나, 자혜로운 교사 한 분의 눈 안에 들어 추천입학을 할 수 있었다. 그분의 존함이 바로 푸른 눈의 조선말 지킴이, 호머 헐버트였다.

마침 주시경 선생과 조선말 표기 정리 중에 있던 헐버트는 조수 역으로 아끼는 제자, 택수를 불렀고 모두가 열의에 찬 채로 밤낮없이 착수하던 시기였다.


“선생님, 무례한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Sure, 전혀 무례하지 않아요. 말해봐요.”
“주시경 선생님과 함께 쉼표, 마침표와 같은 새 표기법을 고안하신 뜻깊은 의도는 알겠으나, 어제 말씀 주신 ‘방송’처럼, 매번 말에 또 다른 뜻을 반영하는 이유가 따로 있으신지요?”
“그래서? 그래서 뭐라고 하신 거야, 오라버니?”

그날의 달 밑에서, 덕향이는 궁금증을 참지 못한 채, 빨간 뺨을 택수에게 들이대며 물음표를 연신 던져댔다. 명주실 같은 달의 빛 만이 내리는 밤하늘 아래선 소녀의 두 볼과 저기 저 나무의 팔에 걸린 감 열매는 왠지 분간이 잘되지 않았다.

“그을쎄, 아구구. 입이 심심해서인지 갑자기 도통 생각이 나질 않는구나! 어디 약과 남은 거 좀 없으려나아아!”
“이번에 저기 장터부터 서른 걸음 떨어진 곳, 새로 생긴 맛치(match의 일본 발음) 공장서 나 일하게 된 거 알지? 이리도 어린 데 어찌 뽑혔게? 성질이 불같아서다!”
“아이고 무서워라, 조만간 불 한번 크게 나겠다야!”


정말 불이 났다. 성냥공장에서가 아니라 농사꾼 아버지가 쌀을 재배하고 계신 경상도로부터 스파-크처럼 전보가 강하게 팍 하고 날아왔다. ‘부친위독급래’라는 통신체를 확인하고 얼마 되지 않아, 가까이 사는 병철 삼촌이 남매를 헐레벌떡 찾아와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다.

소학교 학급서 꼴찌를 도맡고 있는 덕향에겐 너무나 어려운 수수께끼 같은 말들이 오갔다. 함경도 관찰사인 조병식이라는 자가 선포한 방곡령이 황해도, 경상도 등으로 퍼져나가 쌀의 외부 수출을 막으려 했다나 뭐라나. 아무튼 일제는 원래 그랬던 것처럼 쌀을 또 빼앗은 것도 모자라, 조병식에게 사전 통보 미시행 이란 이유를 들어 배상금 11만 원을 부과했댄다.

남매의 아버지는 한창 일본 상인들의 쌀 입도선매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헐값에 쌀을 팔아야 하는 빚더미 난국이 이어지는 와중, 방곡령 철폐라는 소식에 결국 화병이 나 몸 져 앓아누웠다 했다.


“선생님, 혹자들은 지금 조선의 개방이 발전으로 나아간다고 말하는 데, 저희같이 피를 보는 자들에겐 무엇이 득인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택수 군, 자네 부친의 사정은 익히 들었네. 나 역시도 굉장히 유감일세. 만일 지금의 짐이 너무 괴로워 이 편찬 일이 부담된다면, 언제든지 편히 말해주게나.”
“아닙니다, 저는 하루빨리 선생님과 이 과업을 완성해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때 말씀 주신 일도 문제없이 마무리하겠습니다.”

애써 입의 양쪽 꼬리를 귀 쪽에 대어 보지만, 나지막한 한숨은 숨길 수 없는 택수였다. 헐버트 선생을 도와, 조선 최초의 세계지리 교과서 [사민필지(士民必知)]를 써냈지만, 정작 자신의 앞길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필히 개화의 시기이리라.

막막한 밤하늘 아래, 누이와 아버지 그리고 우리말 생각에 왠지 더 막막함을 느끼는 그였다. 오늘따라 유독 달무리가 예쁜 만큼이나 처량해 보였다. 그리고 글피가 되었다.


“향아! 덕향아! 아이고 우리 불쌍한 향이 어찌하나!”
“얘는 난데없이 집까지 달려와 울어대니? 남례야, 개울가 건너오다 살구라도 떨군 게야?”
“그, 그게 아니라 덕향아! 네…… 네 오라버니가 글…… 글쎄!”
“오라버니가? 남, 남례야. 얼…… 얼른 바르게 말해 봐! 우선 냉수부터 줄 테니 어서 들이키고 정신 좀 차려보아!”


동갑내기 친구 남례는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나서야, 비로소 입가의 탭단-스를 멈추었다. 남례가 본격적으로 입을 떼기도 전에, 꽃다운 덕향의 눈가는 우물이 되었고 이유 모를 불안감이 그 위를 범람하고 있었다.

시나브로 1900년 하고도 봄꽃이 일곱 번째 만개를 겪는 때였다. 고종의 부탁으로 헐버트 선생은 바다 건너 헤이그로의 비밀특사 파견에 일조하던 중이었다. 음지서 제4의 특사로 불린 그와 아무도 모르게 협조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택수였다.

훗날 조선인이 아닌 한국인이라 불리는 자들이 이미 역사 교과서에 기록해 놓았듯, 결국 일제는 헤이그 특사 3명의 회의장 입장을 저지했다. 그다음 바로, 이제껏 눈엣가시였던 헐버트를 대한제국 서 추방함과 동시에, 협조자인 택수를 수감시키고만 것이다.

“아니야, 남례야. 아니다, 아닐 것이야. 아버지도 오라버니도 모두 그렇게 될 리가 없어! 어서 너라도 아니라고 말해주렴. 어……어서 빨리!”
“향아, 미안해…… 내가 미안하구나, 정말 미안해…… 이제 우리 덕향이 어쩌면 좋니!”

개화, 널리 문을 연다는 건 좋은 일 일 것이다. 신분제가 법적으로 철폐되고, 땡땡땡 전차도 생겨 발도 날래 편하고, 성냥도 들와서 이렇게 일거리도 생기고 말이다. 거리에 신식 멋쟁이들이 늘어나는 풍경을 볼 때마다 그들처럼 자신도 얼른 모단-걸이 되고 싶다고 바라 온 덕향이었다.



하지만 ‘방송’처럼 말 하나에도 여러 개의 뜻이 붙어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그러한 시대의 변덕 안개만이 그녀 앞에 흩뿌려져 있을 뿐이었다.

개화, 문이 열린 그 너비만큼 밖으로도 이 땅의 것들이 많이 나가게 되었다. 신분제라는 감옥이 없어졌으나, 식민지라는 또 다른 철창 앞에 놓이게 되었다. 전보가 생겼지만 들려온 것은 오직 비보뿐이었다.

“아니야, 오라버니. 적어도 지금 내겐, 방송이 ‘풀어주다’라는 말이야……”

쥐가 한창 밤말을 엿듣는 어두운 시각, 덕향이는 홀로 어느 삼베 색 담벼락에게 꼬옥 안겨있었다. 시간이 흘러 쥐마저 잠에 들 때가 되자, 소녀는 일터에서 남몰래 가져온 성냥갑 하나를 옷 주머니서 꺼냈다.

아무도 없는 밤거리는 오히려 심장의 우물질을 재촉했고, 고르지 못한 숨소리를 연신 꺼내게 했다. 그리고 남몰래 던진 적린과 유리가루의 마찰 결과는 일본인 교도소장의 집으로 향해, 이내 안착하여 불의 꽃을 내었다.

개화(開化)였다.
개화(開花)일 것이다.
아니, 개화(開火)일 것이다.

그리고 소녀 덕향은 누군가의 방송을 누군가에게 방송했다.
쌀도, 약과도 모두 떨어진 그날의 가장 어두운 곳서 세상 가장 밝게.



[뮤즈: 허상범 작가]


[모니터일 뿐이다.]

맹수의 눈은 잔인하다.
맹수의 관념에 투영된 먹이는
이미 그 속내를 훤히 드러내고 있다.
철저히 눈으로 해부되어 비춰진
나약한 부위는
맹수의 저녁 만찬에 어울릴 반찬일 뿐이다.
어제는 속이 빈 먹이가
자신의 빈속을 채울 먹이를 찾느라
다른 먹이들의 속내를 들추고 다녔다.
어떠한 동정도 없다.
토끼처럼 간을 숨겨둔 인형일 뿐이다.
그냥 모니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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