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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했던 그와 결혼하지 않은 이유

Jess / 기사승인 : 2020-02-11 16: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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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달랐던 사랑의 언어

엄마, 나 결혼할까?





그 사람을 만나기 시작하며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었다. 번듯한 대기업 직장에 키도 180 즈음되고, 매너도 성격도 이만하면 됐고, 집안도 괜찮은 듯싶고. 무엇보다도 결혼을 빨리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끌렸던 건 아니지만 착하고 무던하니 한 번 더 만나볼까,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네 번쯤 만났을 때 그는 2차로 갔던 맥주집에서 잔뜩 긴장한 티를 내며 그 대사를 날렸다. "지금 마시는 맥주 다 비우면.. 나랑 사귀는 거야." 그런 캐릭터였다. 뭔가 어설프고 어색한데 나름 구색은 맞추는.





결혼을 빨리 하고 싶었던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나는 그 사람을 좋아했다기보다는, 그가 가진 안정적인 조건들과 나를 좋아해 주는 마음에 끌렸던 것이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시시때때로 결혼 얘기를 했고, 나도 그 사람도 그럴 법한 나이였기 때문에 풋내기 시절의 연애 때처럼 마냥 뜬구름 잡는 소리는 아니었다. 내가 남자 친구 얘기를 할 때면 엄마도 내심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일단 뭐 직장이 좋았고 내가 좋은 말만 잔뜩 늘어놓았으니, 엄마 마음속에는 이미 사윗감으로 합격이었을 것이다.





그랬던 그와 헤어지기 까지는 정말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주 사소하고 미묘한 것들에서 어긋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마 그는 아직까지도 우리가 헤어진 진짜 이유를 모를 것이다. 소개를 받을 당시 나는 무직 상태였다. 일 년쯤 다니던 첫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새로운 도전이 하고 싶어 치킨집 알바를 하며 생활비만 아슬아슬하게 충당을 하는 상황. 당연히 모아 놓은 돈도, 수입도 형편없었다. 나는 결혼을 생각하면서도 그런 상황인 나를 소개받겠다고 한 그의 저의가 순수하게 궁금했다. "오빠, 내가 지금 직업도 없고 불안정한데 왜 소개받겠다고 했어?" 돌아온 그의 대답은 내 예상보다 훨씬 솔직하고 현실적이었다. "응? 나는 여자 직업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사람만 좋으면 되지~"





함께 어느 영화관 안의 도서관에 간 적이 있다. 서로 좋아하는 책을 고르고, 추천해주고, 바꿔 읽고. 따로 또 같이 보내는 그 시간이 내게는 참 행복했다. 다행히 그에게도 그랬던 것 같다. 얼마 후 내게 그 날 도서관에 다녀온 이후로 내가 더 좋아졌다고 말했으니까. '책 읽는 모습이 너무 예뻤어'라든가 '지적인 모습이 새로워 보였어' 같은, 뻔하고 유치한 대답을 내심 기대하며 나는 어떤 게 좋았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상상초월이었다. "나중에 결혼하면, 내가 회식하고 늦게 들어와도 채근 안 하고 얌전히 책 읽으며 기다릴 것 같아서."





나는 그가 원하는 현모양처가 아니었다. 또 한 명의 신랑 후보를 내 인생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 씁쓸했지만, 그의 정숙한 아내가 될 수 없는 것이 조금도 아쉽지는 않았다. 서로 그리는 부부상이 확연히 달랐을 뿐 그는 나쁜 사람이었던 것도, 나를 쉽게 생각했던 것도 아니었음을 안다. 뼛속까지 이과인 사람이라 내가 원하는 아웃풋을 위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인풋을 입력해야 하는 공대남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오류가 난 적이 있었다. 모든 문화권과 사랑의 역사를 통틀어 수많은 연인들을 시험에 들게 한 그 마성의 질문. "너는 나를 얼마나 사랑해?"의 난관에 부딪힌 것이다. 물론 나는 그에게 감상적이고 창의적인, 대단한 미사여구를 바라지 않았다. 그 정도의 현실감각은 있기에 그가 알아듣기 쉽도록 이과 감성으로 적당히 치환해서 질문을 한 것이다. "마음의 크기가 1부터 100까지야. 그럼 나에 대한 마음은 몇 정도야?"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심지어 상대를 많이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눈치껏 99나 100, 200 같은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아무리 센스가 없어도 90 정도는 말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이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면. 질문의 저의는 실제 사랑의 값을 측정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많이 사랑한다는 것을 재확인하려는 어리광임을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한 번,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놀라웠다.





"음.... 60?"





그야말로 할 말을 잃었다. 다 차려진 밥상, 대충 100이라고 대답하고 넙죽 받아먹기만 하면 되는데 굳이 싫다며 하이킥으로 날려 버리는 것이다. 당황함과 동시에 열 받은 나를 급히 진정시키며 그가 늘어놓은 설명은 이랬다. 마음의 양을 숫자로 치환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음은 실제 측정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자기한테는 보다 정확한 기준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떠오른 게 돈이었다. 재산. 그래, 사랑만큼 중요한 게 돈 아니겠는가. 그래서 본인 재산의 얼마만큼을 나에게 줄 수 있을지 고민을 해 봤는데, 60%는 가능할 것 같다는 결론에 다다랐단다. 나름 치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한 심사숙고 끝에 나온 숫자였다. 60.





화를 내야 할지, 감동을 받아야 할지 헷갈리는 순간이었다. 분명한 건 나는 내 돈의 60%를 그에게 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6%도 아까웠을지 모르겠다. 여하튼 나보다 그의 마음이 큰 건 명확했으니 웃고 넘길 수 있는 귀여운 에피소드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사실 우리가 맞지 않는 짝임을 여실히 드러내 보이는 선명한 증거였다. 그와 나는, 그와 나의 사랑의 언어는 그토록 달랐던 것이다.





카페에 마주 앉아 어렵게 헤어짐을 꺼냈을 때, 그는 내 손을 꽉 잡고 놔주지를 않았다. 왜 그래, 우리 결혼하자..아직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많다고 핑계를 대자 기다릴게, 아니면 결혼하고 하면 되지, 다 괜찮아.. 결국 나는 이 남자 저 남자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그래도 감당할 수 있겠냐고까지 말해야 했다. 그는 풀 죽은 강아지처럼 그제야 처량하게 이별을 받아들였다. 그래도 한참 동안 손을 놓지는 않았다. 그의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을 때까지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마지막 배려였다.





얼마 전 그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짧게 스쳐 지나간 인연이니 내 인생에 별다른 영향을 끼친 것도 없지만 적어도 모두 제 짝이 있다는 한 가지 희망은 던져주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그저 잘난 사람, 착한 사람이 아닌 나와 같은 언어로 사랑을 말하는- 내 사람을 언젠가 마주치기를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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