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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비 작가의 에세이

김미진 기자 / 기사승인 : 2019-12-26 18:4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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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젖을 먹고 자란 아이> 저자 알비


책 소개


[염소젖을 먹고 자란 아이]는 알비 작가의 에세이다.


책은 알비 작가의 수필 51편으로 구성되어, 어렸을 때부터 예민했던 감성을 글의 방향으로 삼아 가족, 도전, 상상 등 일상의 에피소드를 산문시나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내었다.



[출처: 인디펍]

저자 소개


저자: 알비


1963년생. 화장품 가게, 꽃꽂이강사, 가구점 운영, 주택관련 컨설팅 등 먹고 사느라고 직업을 열댓개 정도 거쳤고 현재 직장인.


단독주택에 딸린 개인 작업장 갖는 게 꿈인 사람.


목차


1. 염소젖 12 / 2. 인생 총량제 17 / 3. 지렁이 20 / 4. 우리시대 만화방 23 / 5. 외삼촌의 쇼핑 법 27 / 6. 아버지와 성적표 31 / 7. 소소한 행복 35 / 8. 나 혼자 산다 39 / 9. 조선간장 44 / 10. 페이지 터너 48 / 11. 세상에 태어나 처음 한 일들 51 / 12. 아파트와 도덕경 54 / 13. 누가 말 좀 해줘요 59 / 14. 매미 62 / 15. 분식집 65 / 16. 바닥에 뜬 별 68 / 17. 조언 71 / 18. 고독한 취미 74 / 19.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80 / 20. 내가 만일 83 / 21. 월급 87 / 22. 영화 같은 일 90 / 23. 흔적 94 / 24. 흰머리 염색 100 / 25. 현충원의 이별 104 / 26. 오해에 관하여 107 / 27. 병원 앞에서 112 / 28. 대체 되다 115 / 29. 고맙다 친구야 118 / 30. 국민학교 동창에게 보낸 편지 -1 123 / 31. 국민학교 동창에게 보낸 편지 - 2 125 / 32. 되돌아온 크리스마스 선물 128 / 33. 뭣이 중헌디 131 / 34. 빨간 립스틱 134 / 35. 빛날 사람은 어디에서도 빛나는 법이야 138 / 36. 비요일의 허기 141 / 37. 불편한 의자 144 / 38. 샤워 말고 다른 말 146 / 39. 상상 이상 149 / 40. 아버지와 아들 152 / 41. 무남독녀 155 / 42. kill, kill, kill 159 / 43. 그 녀석들과의 전쟁 161 / 44. 거북이 전성시대 166 / 45. 글을 배우러 간다 169 / 46. 해봐야 안다 172 / 47. 어둠속에 177 / 48. 나는 늙었다 180 / 49. 남편의 부고 - 2013 182 / 50. 특수 청소부 186 / 51. 언젠가는 189


본문


염소젖을 마셔보았는가.


살아오면서 염소젖을 먹어본 사람을 이제껏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염소젖을 배달시켜 먹고 자란 사람이 주변에서 어찌 나뿐이었는지 언제나 그게 의문이다.


어린시절 아침마다 허리가 잘록하게 생긴 코카콜라 병에 담겨오던 따듯한 염소젖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잠에서 깨어나면 언제나 문 앞에 놓여있는 코카콜라병에 배달된 염소젖이 보였다. 어머니는 식기 전에 먹도록 채근하시면서도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바라 보셨다. 여덟 살이 채 안되었을 때의 기억이니 1960년대 후반의 일이다.


웬일인지 그때의 기억은 너무나도 맑고 생생하여 지금도 그때의 이웃에 살던 사람들 별명이나 생활상과 사건들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을 정도다. 일례로, 엄마와 친했던 경산이네라는 이웃의 이름과 축대위의 집에 살던 '방아코'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언니도 기억난다. 나는 늘 그 별명의 생성과정이 궁금했었다.


이상할 정도로 많은 것들이 기억나는 시기다.


어머니는 허약한 자식의 몸을 보양시키고 영양을 보충해줄 요량으로 염소젖을 내게 먹이셨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우유가 따듯한 유리병에 담겨 배달되던 시절이니 어린 나는 사실 그 서울우유가 먹고 싶었다. 익숙한 로고가 빨간색으로 선명하게 새겨진 서울우유 병이 남의 집 대문 앞에 있는 것이 부러웠다. 그 시절엔 우유, 아이스크림, 초콜릿이 부유해보였던 시대였으니까.


나는 늘 의아했다.


우유를 시켜주지 왜 염소젖을 배달시켰을까?


어려웠던 시절이니 우유보다 값이 싼 염소젖을 배달시켰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왠지 그 일이 가난의 상징 같아서 그동안 남에게 염소젖에 얽힌 이야기는 잘 꺼내지 않았다. 아직 철이 덜 들었나보다.



최근 우연한 기회에 시를 읽다가 남편이 허약한 부인을 위해 염소를 구해다 젖을 짜서 먹였다는 내용을 발견하고는 낯선 타향에서 반가운 고향사람 만난 것처럼 기쁜 심정이 들었다.


나희덕 시인의 '나평강 약전'이라는 시에 나오는 문장인데,


'입덧이 심한 아내를 위해 얼룩염소 한 마리를 사다가 젖을 짜 먹였다'


라는 구절이다.


그 시를 읽은 날, 가슴 깊은 곳에서 너무 늦은 회한의 울렁거림이 미처 감출 새도 없이 '후우우욱'하고 입에서 길게 쏟아져 나왔다.


- '염소젖' 중에서 -


살면서 세상이 나에게 불공평하다고 느껴진 적이 꽤 있다. 그럴 때마다 인생에는 총량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 일어난 불행한 일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양을 채우면 행복해질 수 있는 법칙 같은 것 말이다. 사춘기 때는 반항 총량제가 있고, 갱년기 때는 우울 총량제가 있어서 언젠가는 힘든 일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면 좋겠다. 무척 안심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행복도 정해진 양만큼만 누릴 수 있다면 사람들이 더 겸손하게 세상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이런 희망이 받아들여진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주역(周易)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일종의 점복술인데 나의 미래가 궁금해서 물어봤다. 물론 그 점괘풀이가 절대적이지 않은 것을 알지만 그래도 미래는 언제나 궁금하다. 궁금함의 이면에는 불안감이 있다. 지나간 시간들 중 힘들고 불행했던 일만큼은 다시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의 다른 이름이다.


이혼과 사업실패와 억대의 빚과 실직과 부모님의 병환이 한꺼번에 몰아닥치는 생각도 하기 싫은 끔찍한 불운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친구가 괘를 풀이하는 동안 나는 엄마 앞에서 과자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순하게 내 운명의 선고를 기다렸다. 구복(求福)의 신앙이 소신과 철학보다 앞서는 나약한 순간이다. 친구는 생년월일을 묻고 이모저모 사주를 풀어보더니 이미 고생을 다 겪어서 이젠 행복할 일만 남았다고 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고 누구나 듣고 싶어 하는 예언이다. 왠지 두려움이 없어지고 자신감이 부풀어 올랐다.


늑대가 침범하지 못할 벽돌집을 지은 아기돼지 삼형제가 집을 완성한 순간 아마 이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신이시여, 이제 내 불행 총량이 다 채워졌으니 그리 알고 행복 총량중 남은 것을 쓰게 해주세요."


마음속에 기도가 올려졌다.


- '인생 총량제' 중에서 -


초복더위 땡볕에 지렁이 한 마리가 메마른 보도블럭 위를 기어가고 있다. 며칠 새 비가 온 기억도 없는데 어느 구멍으로 기어 나왔는지 모르겠다. 기어가는 것인지 몸부림을 치는 것 인지 마른 흙 묻은 몸을 이리저리 굴리며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저 '지렁이'씨는 오늘 안에 집에 갈 수 있을까.


다시 돌아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아! 지렁이는 집이 없을 수도 있겠다. 자웅동체이니 아내나 자식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모름지기 집이란 가족이 있어야 돌아가는 맛이 나는 법인데 태생적으로 독신인 지렁이는 돌아가도 혼자이면 그냥 자기 동굴일 뿐이다. 마트 가는 길목에서 우연하게 조우한 지렁이의 안녕을 빌고 나는 내갈길 간다.



오랜만에 뜻밖으로 지렁이와 마주치니 예전의 추억이 떠오른다. 벌레를 귀여워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지렁이를 예쁘게 생각한 적은 있었다. 한창 낚시에 빠진 사람들은 지렁이하고 연애를 한다. 잡고 싶어서 눈에 아른거리는 물고기를 이어주는 절실한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렁이의 빨간 몸에 입술을 쪽하고 맞추는 사람도 본적이 있다. 나는 그정도 까지는 아니어도 아무튼 낚시에 빠졌을 당시 지렁이를 꽤 예뻐했다. 낚시가게에서 파는 실지렁이는 길가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게 생겼다. 더 작고 빨간색이어서 비오는 날 길 위로 기어 나오는 놈들 보다 비주얼이 좀 더 낫다. 고물거리는 그놈을 맨손으로 잡고 낚시 바늘에 꿰며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는 멘트와 함께 낚시 줄을 던지곤 했다.


지렁이에 대한 대부분 사람들의 반응은 '징그럽다'인데 경험에 따라 예쁘게도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전자가 생물에 대한 직접적인 단상이라면, 그와는 또 다른 형태로 지렁이를 동경한 시절이 있었다. 내가 지렁이처럼 자웅동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가시 박힌 사랑에 상처를 모질게 받고도 그리움이 남아있을 때의 갈등 때문이었다. 사랑이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생물이기를 갈구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주변에서 그런 동경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


- '지렁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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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밸류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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