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승인자 “첨부파일 안 봤다”…관행적 결재·법무 검증 생략
정용진 직접 사과했지만 “왜 아무도 못 걸렀나” 비판 확산
[소셜밸류=한시은 기자]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스타벅스코리아(SCK컴퍼니)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에 대해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섰지만 후폭풍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연매출 3조원대인 스타벅스코리아의 허술한 내부 통제 시스템을 둘러싼 비판이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있다. 회사측은 프로모션 기획부터 소비자 배포까지 수차례 내부 결재와 보고 절차를 거쳤음에도 단 한번의 문제 제기조차 없었다며 스스로 문제를 드러내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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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호텔에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사진=한시은 기자 |
27일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그룹은 지난 26일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과 관련한 내부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문제의 프로모션은 스타벅스코리아 커머스팀이 기획해 복수의 결재를 거쳐 최종 확정됐다는 것이 그룹측의 설명이다. 다만 그룹은 고의성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근거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앞서 스타벅스코리아는 지난 18일 공개한 ‘5·18 탱크데이’ 이벤트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탱크 진입과 고(故)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희화화했다는 비판에 휩싸이며 불매 움직임으로까지 번졌다. 비판이 본격화한 당일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손정현 스타벅스코리아 대표와 이벤트 담당 임원을 즉시 해임했고, 이튿날 본인 명의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진화에 나섰다.
이후 신세계그룹은 스타벅스코리아 임직원을 대상으로 내부 조사를 진행했고, 정 회장은 1주일이 지난 26일에서야 직접 카메라 앞에 서 사과와 함께 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재발 방지 대책을 약속했다.
이날 전상진 신세계그룹 경영총괄 부사장은 “사건 발생 직후인 19일부터 일주일간 스타벅스 임직원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내부 조사를 진행한 결과, 고의성을 갖고 해당 마케팅을 기획했단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면서도 “일부 임직원들이 휴대폰 제출을 거부하는 등 회사 차원의 조사에 법적 절차적 한계가 제약 요건으로 작용한 영향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사안의 엄중함을 고려해 이번 마케팅에 관여된 5명 모든 직원의 직무배제 및 대표와 담당 임원을 해임 조치했으며 향후 경찰 조사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려는 고의성 여부가 입증될 경우 해당 임직원을 즉시 징계조치하고, 민형사상 책임까지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5월18일 ‘탱크데이’ 기획 배경은
신세계그룹은 행사 주관 부서인 커머스팀 전원과 전략기획본부, 대표이사 등 결재 라인을 대상으로 휴대폰·노트북 포렌식과 교차 조사를 진행했지만, 결과적으로 어느 단계에서도 문제를 인지하거나 제동을 건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사에 따르면 커머스팀은 ‘탱크데이’ 명칭과 행사일(5월18일)에 대해 제품명과 재고·입고 일정을 고려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단테데이’와 ‘나수데이’ 역시 텀블러 제품명을 활용한 행사였고, 탱크 텀블러의 경우 입고 시기와 매출 비중 등을 고려해 월요일인 5월18일로 정했다는 설명이다. 탱크 텀블러의 명칭과 용량(503㎖)도 해외 공급사가 정한 사양이라고 해명했다.
논란이 된 ‘책상에 탁!’ 문구 역시 기존 ‘가방에 쏙’ 문구와 운율을 맞추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설명이다. 커머스팀은 탱크 텀블러가 기존부터 ‘데스크 메이트’ 콘셉트로 홍보돼 해당 표현을 떠올렸다고 주장했다. 해당 문구는 커머스팀이 임원 및 경영진 보고 없이 삽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 “첨부파일도 안 열고 승인”…4단계 결재도 무용지물
다만 이번 조사 과정에서 스타벅스코리아의 마케팅 검증 및 리스크 관리 체계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조사에 따르면 문제의 프로모션은 스타벅스코리아 커머스팀이 제안한 뒤 팀장·담당·본부장·대표이사까지 4단계 결재 라인을 거쳐 최종 확정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룹 측이 설명이다.
더 큰 문제는 일부 승인자들의 형식적 결재 관행이었다. 마케팅 행사 합의자 7명 가운데 일부는 디자인 시안이 담긴 이메일 첨부 파일조차 열어보지 않은 채 결재한 것으로 조사됐다. 여기에 마케팅의 즉시성을 우선시한다는 이유로 과거 운영되던 법무팀 검증 절차도 생략된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과정에서는 일부 직원들이 논란 직후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정황도 드러났다. 관련 직원들은 조사에서 “기존 텀블러 홍보 문구였던 ‘가방에 쏙’과 라임을 맞추는 데 급급했다”, “AI에 (문구를) 물어봤다”, “5·18은 생각조차 못했다”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슈화 이후 다시 보니 문제가 될 수 있겠다고 인지했다”고 진술했다. 손정현 대표 역시 사건 직후 사내 메신저에서 “이런 문구를 하필… 그룹과 즉시 내용을 공유하고 대응하자”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내부 조사 과정을 둘러싼 논란은 남아 있다. ‘탱크데이’ 명칭을 제안한 직원 등 커머스팀 일부 인원이 휴대폰 제출을 거부하면서 관련 대화와 업무 처리 내역을 확인하지 못했고, 사내 메신저 기록이 서버에 일주일만 저장돼 초기 기획 단계에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에 대해 신세계그룹 측의 발표를 종합해 보면 직원들의 안일할 대처와 내부 감독체계의 부실로 요약이 된다.
◇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다”…사과문 표현도 논란
한편 정용진 회장의 대국민 사과를 두고 적절한 대응이었다는 평가가 나온 반면, 일각에서는 정 회장 책임론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정 회장의 사과문 중 “지금은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더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고 더 나은 세상을 미래 세대에게 남겨주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우리 모두 같다고 믿는다”라는 표현을 두고서 논란이 일었다.
5·18 민주화운동과 국가폭력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중심인 사안에서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다’는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민주화운동과 역사 왜곡 문제를 ‘양쪽 의견 차이’ 수준의 메시지로 비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과거 정 회장의 ‘멸공’ 발언 등 정치적 논란 이력과 스타벅스코리아의 유사한 정치·역사적 논란이 재조명되면서 오너뿐 아니라 기업 차원에서 역사 인식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 26일 입장문을 내고 “정 회장 사과는 전형적인 총수 면피용 대본에 불과하다”며 “도의적 책임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자신에게 닥칠 사법적·법적 책임에 대한 교묘한 회피일 뿐”이라고 밝혔다.
참여연대 역시 “정 회장의 사과에는 책임 인식과 후속대책이 턱없이 부족해 그 어떤 진정성도 찾아보기 어렵다”며 “반복되는 내부통제 실패와 반역사적·반인권적 기업문화에 대한 정 회장이나 이사회의 책임도 명시되지 않은 꼬리 자르기 사과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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