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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동시대 여성 작가를 다루는 비정기 문학잡지 [After Sentimental]의 두 번째 이야기

오도현 / 기사승인 : 2020-03-18 21:5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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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Sentimental 02 황정은] 저자 강명지, 강병우, 김소원, 김연재, 깜장, 몽룡, 이승준, 이진우, 최수현, 최혜조, 탄산

책 소개



<After Sentimental>은 한 호에 한 명의 동시대 여성 작가를 다루는 비정기 문학잡지로, 읽고 생각하고 쓰고 대화하는 즐거움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책을 덮고 내면에 남은 막연한 느낌을 불씨 삼아, 모두 둘러앉아 쬐는 모닥불 같은 사유의 공동체를 피워내기를 꿈꾼다.


이번 <After Sentimental 02 황정은>에서는 황정은 작가의 작품들을 다루었다. 여러 작품을 엮은 평론이나 책을 읽고 나눈 대화, 특정한 부분에 집중하여 주관과 방향성을 가지고 작품을 읽어낸 글, 작품의 독특한 부분에 천착하여 취향을 담아낸 개인적인 글 등 다양한 감상을 실었다. 작품을 가볍게도, 무겁게도 통과하며 문학이 삶 속에 들어와 삶의 모양을 바꿀 수 있기를 바랐다.



출처: 별책부록
출처: 별책부록


저자 소개



저자: 강명지, 강병우, 김소원, 김연재, 깜장, 몽룡, 이승준, 이진우, 최수현, 최혜조, 탄산





목차



Thread


작가 소개 9 / 황정은의 평행 세계 18 / 황정은의 문장들 21



Weave


이 세계의 행복 - 황정은론 35 / 대담 1 63 / 대담 2 93



Pattern


쓰러뜨릴 가부장이 없는 세상 125 / 압도적인 공간에 내던져진 인간에게 131 / 인간다움의 실패에 대해 141 / 어느 벌레 이야기 145



Stitch


고양이도 행복하게 해주세요 159 / 빈티지 163 / 실리의 골격을 닮은 문장이 매일 조금씩 달라지면서 이야기도 조금씩 달라지는 걸 지켜보는 게 좋았다 173 / 그림자와 그르매와 그르매는 아닌 것 183 / 집의 구조 195





본문



행복하자, 라고 말할 때 우리가 상상하는 행복이 관리자의 행복이 아니라면 (혹은 아니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떤 행복을 상상해야 하는가.



이토록 폭력적인 세계에서 개인이 행복해지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세계로부터의 탈출일 것이다. 불행에서 멀어지기, 벗어나기, 도망하거나 탈출하기. 그것이 가능했다면, '나'는 "1997년 여름에 나는 포도밭에서 빠져나오면서 그곳을 떠났다."로 시작되는, "불모의 세계를 탈출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엇을 상상하고 어떻게 써도 거짓말, 기만이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195-196)으며 그 이유로 쓰기에 실패한다. 왜냐하면 세계는 늘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고 있으므로.



탈출할 수 없어.(283)



『디디의 우산』에서 탈출 불가능성은 파일럿의 이미지를 통해 제시되며 약간의 변화를 겪는다. 「d」에서의 탈출은 이웅평 대위가 전투기를 몰고 남한으로 넘어온 것으로 상징되는데, d는 그 귀순을 보고, "내게는 그것이 없어. / 나는 내 환멸로부터 향해 갈 곳도 없는데요."(114)라고 말한다. 저 세계에서 이 세계로 넘어오는 경험.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넘어가는 경험. 그 경험은 이웅평 대위에게는 가능했지만 d에게는 불가했고 d와 같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역시, 그것을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세계는 그렇게 또렷하게 구획되어 있지 않고, 이제 더 이상 이쪽과 저쪽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으니까.



황정은은 가피해의 경계를 흐려 이쪽과 저쪽의 구분을 무화했던 『아무도 아닌』을 넘어,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에서 사회적인 맥락에서의 이쪽과 저쪽에 대해 치밀하게 사고하도록 여러 장치를 설정해 두고 있다. 가장 명확하게 구분의 경계를 의심하게 되는 장면은 '나'가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시위에서 "惡女 OUT"을 목격하는 장면이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에 악녀 아웃이라고 적힌 팻말을 봤다고 나는 서수경에게 말했다.


'녀'가 빨간색이었다고.


불쾌했겠다고 서수경은 말했다. 나는 그랬다고, 불편하고 불쾌했다고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걸 목격한 사람은 청와대 깊숙이 숨은 대통령이 아니고 그 팻말 앞에 선 나였으니까. 계집女인 나. 惡女 OUT이 지금 그의 언어라면 그것이 그의 도구인데 그의 도구가 방금 여기서 내게 한 일을 그는 알까. 그는 자기처럼 이 자리에 나온 많은 여성들은 왜 보지 않을까.


(중략)



- 52페이지 중에서 -




김 : 이 두 개가 되게 다른 거지 않나. 너와 내가 같다라는 인식이 없어야 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건 기본인 거고. 그래서 그 지점에 대해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에서, 나치에 의해 희생된 동성애자 추모관을 찾았을 때 서수경과 김소영이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장면. 한 명에게는 그렇게 해야 보일 테니까, 라는 맥락에서 가시화로 보이고, 다른 한 명에게는 또 다른 차별과 배제와 격리로 보였다고 말하는 장면. 어떤 유표화에 대해서, 그 부분이 인상 깊었던 것 같다. 그 두 가지 맥락이 모두 절실하게 이해되어서. 우리 모두 같다, 라는 인식과 같다라고 말하면 안 된다, 라는 맥락이 분명히 다르긴 하지만 쉽게 혼동되고 그게 혼동되어 섞여버렸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두 가지 측면이 거기에서 잘 드러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그 지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몽 : 사실 사람이 그런 부분을 들여본다는 게, 그건 정말 하지 않음으로써는 할 수 없는,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니까. 그런데 잘 모르겠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그것을 깨달았을 때 그것을 칭찬해줘야 하나? 그것을 격려해주고 잘했다고 인정해줘야 하나? 왜냐하면 사실은 그게 또 다른 특권이지 않나. 의미 있는 건 맞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대단한······ 걸 수도 있는데, 그걸 그렇게 잘했다고 말하기에는. 사실 그냥 부끄러워하고 말아햐 하는 것이 아닐까. 이미 깨달았다면.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김 : (웃음)



몽 : 나는 황정은이 어떤 '함'에 대해서 말하고 있더라도, 변함없이 겸손하기 때문에 좋다. 하지 않음이라든지 이런 것은 기본적으로 어떤 스스로 조심하는, 삼가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할' 때도 그런 삼감의 태도가 필요하다. 항상 겸손해야 한다. 우리는 인간이지 않나.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고 그렇기 때문에 항상 겸손해야 한다. 내가 맞다, 내가 옳다, 내가 이제 다 깨달았고 나는 족하다, 이런 것 말고 정말 항상 두려워하고 항상 겸손해야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우리의 현실에서는 그런 사람들은 거침없지 않으므로 천천히 나아가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거침이 없는 사람들이 항상 더 전면에 서고 더 큰 영향을 끼치고, 그렇게 폭력의 파도가 되는 것 같은······. 그런데 어쨌든 변함없이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황정은은 겸손하다고 생각한다. 겸손해서 좋다.



총체적으로 말하자면, 선량한 『백의 그림자』부터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까지 전체적으로 총체적으로 황정은은 겸손하다고 생각하고 줄곧 겸손한 태도를 견지해왔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내가 황정은을 좋아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장 그르니에의 무죄와 정의에 관해서 정의는 위험하다, 라는 말을 했지 않나. 정의는, 거침없는 정의는 정말로 폭력적이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유죄인 세상에서 무죄를 지향할 수 없으므로, 무죄가 될 수 없으므로, 무죄가 되는 태도에 머무를 수 없으므로, 어떻게든 정의를 지향하게 되지만, 그리고 점점 더 하지 않음에서 어떤 것을 함, 또는 하지 않음을 함으로 이동하게 되지만, 그때 모든 과정에서 일관적으로 겸손해야, 모든 과정에서 일관적으로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 가 내가 내린 윤리에 대한 어떤 한 결론인 것 같다. 겸손한 정의 추구. 그것이 바로 '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 '하는' 태도가 아닐까.



김 : 윤리적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인지에 대해서 나는 점점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끝없는 자아 검열과 자기 반성, 이면서 그 부끄러움에 무뎌지지 않는 거. 내가 부끄러운 상태에 놓여 있음에 죄책감과 괴로움을 느끼는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거, 그 괴로움을 받으면서.


몽 : 굉장히 닳아빠지는 일이지.



- '대담 2', 119페이지 중에서 -




아들은 아버지와 경쟁하고, 어머니를 독점하려 한다. 아버지를 향한 공포와 미움, 죄책감과 선망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애착을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정의했다. 오이디푸스적 서사에서 아버지는 강력하여 두려움과 선망의 대상이 되며, 아들은 그 아버지를 죽이거나 뛰어넘음으로써 그와 동일화한다. 이는 결국 아버지에게 가부장으로서의 권력이, 위상이 있기 때문에 성립된다. 아버지를 쓰러뜨리는 과정은 아들에게 있어서 가부장제의 내부자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라는 울타리 바깥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롯이 아버지와 아들뿐이므로, 아들이 아닌 자식은 아버지를 넘어서는 자로서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넘어설 아버지가 부재할 때 이 구조는 어떻게 변화할까? 아버지가 선망이나 공포의 대상이 되지 못할 경우는? 자식이 딸이거나 성별이 모호해 애초부터 가부장제의 계승자일 수 없다면? 보다 근본적으로, 아버지와 가부장제를 그렇게까지 경외하고 선망하며 그 안에 편입하고자 아등바등할 필요가 있을까?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와 황정은의 「모자」는 이러한 의문에 답을 내놓는 글들이다. 「달려라 아비」의 '시시하고 초라한' 아버지는 도망쳤으며, 「모자」의 아버지는 초라해질 때마다 모자로 변한다. 그리고 '아들'로 지칭될 수 없는 자식들은 아버지를 죽이지도 뒤따르지도 않는다.



「달려라 아비」는 아버지를 놓으며 화자가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나'의 아버지는 한심한 남자다. 딱 한 번 달린 것은 어머니와 섹스하기 위해서였고, 어머니가 임신하자 도망쳐버렸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어머니와 단 둘이 자랐다. 그러니 남은 사실들을 종합할 때 아버지는 가부장의 권위나 위상과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그러나 추락한 아버지의 달리기를 상상하며 아버지의 부재를 자기 나름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인다. 자식을 "농담으로 키"운 어머니에게 딸은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법을 배웠고, 모녀의 2인 가정은 아버지 없이도 그들 방식대로 건강하고 유머러스했다. 그러므로 '나'에게 아버지는 막연한 상상일 뿐이다.



- '쓰러뜨릴 가부장이 없는 세상', 125페이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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