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 ‘렉라자’ FDA 승인…국산 항암 신약 글로벌 성공 가능성 입증
보령·한미약품·GC녹십자, 차세대 항암 파이프라인 확대
[소셜밸류=소민영 기자] 난치암으로 꼽혀온 췌장암 치료제 시장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면서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항암제 개발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RAS(암세포의 성장과 증식에 관여하는 주요 신호전달 단백질)를 직접 겨냥한 전이성 췌장암 표적치료제를 승인하면서 그동안 치료 선택지가 제한적이었던 췌장암 분야에서도 신약 개발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영향으로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의 항암 신약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앞서 유한양행의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가 2024년 미국 FDA 승인을 받으며 국산 항암 신약의 글로벌 상업화 가능성을 보여준 가운데, 이번 췌장암 표적치료제 허가로 췌장암·폐암·혈액암·고형암 등 다양한 암종을 겨냥한 국내 기업들의 임상 개발 경쟁에도 한층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 |
| ▲사진=AI 생성 이미지(ChatGPT) |
4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FDA는 지난달 26일 레볼루션 메디슨(Revolution Medicines)의 ‘라손크(Rasonque·다라손라십)’를 전이성 췌장선암 치료제로 승인했다.
라손크는 암세포 성장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RAS 단백질을 억제하는 치료제다. 전이성 췌장선암을 대상으로 한 ‘퍼스트 인 클래스’ 표적치료제로 평가된다.
이번 미국 승인으로 난치암에서도 새로운 표적을 활용한 치료제 개발 가능성이 확인된 만큼, 국내에서 진행 중인 췌장암 신약 임상과 차세대 항암 파이프라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 온코닉테라퓨틱스, ‘네수파립’으로 췌장암 정조준
국내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췌장암 신약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는 곳은 온코닉테라퓨틱스다.
온코닉테라퓨틱스는 PARP(손상된 DNA를 복구하는 데 관여하는 효소)와 암세포의 성장·증식 신호를 조절하는 탄키라제(Tankyrase)를 동시에 억제하는 이중표적 항암 신약 ‘네수파립’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췌장암을 비롯해 자궁내막암·난소암·위암 등 4개 적응증에서 임상 2상 단계 개발을 진행 중이다.
이 회사는 올해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2026)에서 전이성·진행성 췌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1b상 결과도 공개했다. 네수파립 병용군에서는 환자의 53.8%에서 종양이 줄었고, 92.3%에서는 종양이 줄거나 진행이 억제됐다. 전체생존기간 중앙값은 14.2개월이었으며, 일부 환자는 암이 사라진 상태로 40개월 이상 생존한 사례도 확인됐다. 다만 초기 임상 결과인 만큼 향후 2상에서 효능과 안전성을 다시 입증해야 한다.
미국에서 RAS 표적치료제가 실제 허가까지 도달하면서 국내 췌장암 후보물질 역시 임상 데이터 확보와 글로벌 기술수출 가능성이 중요한 관전 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 리가켐바이오, CLDN18.2 표적 ADC로 췌장암 공략
리가켐바이오는 췌장암을 포함한 고형암 치료를 목표로 CLDN18.2(위암·췌장암 등 일부 암세포 표면에 많이 나타나는 단백질)를 표적으로 하는 항체약물접합체(ADC) 후보물질 ‘LCB02A’를 개발하고 있다. LCB02A는 암세포를 찾아가는 항체에 강력한 항암 약물을 결합해 정상세포 손상은 줄이고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방식이다.
리가켐바이오는 지난 5월 미국 FDA로부터 LCB02A의 글로벌 임상 1·2상 시험계획을 승인받았다. 임상은 미국·캐나다·한국에서 CLDN18.2 양성 진행성 고형암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되며, 주요 적응증에는 위암과 함께 췌장암이 포함된다. 올해 3분기 첫 환자 투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
비임상에서는 경쟁 약물보다 낮은 용량에서도 종양 소실 효과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아직 실제 췌장암 환자에서 치료 효과가 입증된 단계는 아니어서, 향후 임상에서 안전성과 항종양 효과를 확인하는 것이 핵심 과제다.
◇ 유한양행 ‘렉라자’, K-항암제 FDA 진출 사례로 주목
국내 항암 신약의 글로벌 성공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 사례는 유한양행의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레이저티닙)’다. 유한양행은 2015년 제노스코로부터 후보물질을 도입해 개발을 이어갔고, 2018년 존슨앤드존슨(J&J) 계열 얀센에 최대 12억5500만달러 규모로 기술수출했다. 이후 글로벌 임상을 거쳐 2024년 8월 미국 FDA 허가에 성공했다.
FDA는 렉라자를 J&J의 ‘리브리반트(아미반타맙)’와 함께 사용하는 방식으로, EGFR(폐암세포의 성장과 증식 신호를 전달하는 단백질) 유전자에 특정 변이가 있는 국소 진행성·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1차 치료제로 승인했다. 구체적으로는 EGFR 유전자의 일부가 사라진 ‘엑손19 결손’이나 특정 위치의 유전정보가 바뀐 ‘L858R 치환 변이’를 가진 환자가 대상이다. 미국에서는 ‘라즈클루즈(LAZCLUZE)’라는 제품명으로 판매되고 있다.
상업화 이후 매출도 빠르게 늘고 있다. J&J에 따르면 리브리반트·라즈클루즈 제품군의 2025년 글로벌 매출은 7억3400만달러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고, 2026년 상반기 누적 매출은 5억4600만달러를 기록했다. 다만 이 매출이 전부 유한양행 실적으로 잡히는 것은 아니며, 유한양행은 계약에 따라 판매액 연동 로열티와 단계별 마일스톤을 받는 구조다.
유한양행은 미국·일본·중국·유럽 상업화에 따른 마일스톤도 순차적으로 수령하며 누적 계약 수익을 확대하고 있다. 렉라자는 단순한 FDA 승인 사례를 넘어 기술수출→글로벌 임상→해외 허가→실제 판매 확대→로열티 유입으로 이어지는 국내 항암 신약의 글로벌 사업화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 보령, 혈액암 신약 ‘보스몰리십’ 개발…항암 경쟁력 확대
항암사업을 핵심 성장축으로 키워온 보령도 자체 신약 개발에 힘을 싣고 있다.
보령은 재발성·불응성 말초 T세포 림프종(PTCL)을 대상으로 항암 신약 ‘보스몰리십(BR101801)’을 개발 중이다. 이 후보물질은 암세포의 성장과 증식을 돕는 PI3Kγ·PI3Kδ와 암세포의 손상된 DNA 복구를 돕는 DNA-PK를 동시에 차단하는 방식이다. 2022년 미국 FDA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됐으며 국내에서도 개발단계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았다.
임상 1상에서는 환자 19명 중 3명은 암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라졌고, 3명은 암 크기가 줄어드는 효과를 보이는 등 총 6명에서 치료 반응이 확인됐다. 최근에는 임상 1상 최종 데이터가 공개된 데 이어 임상 2상 개발을 통해 재발·불응성 말초 T세포 림프종 치료 가능성을 검증하고 있다.
보령은 자체 신약 개발과 동시에 기존 항암제 사업을 확대하면서 항암 분야의 사업 기반 자체를 넓히고 있다는 점에서도 차별화된다.
◇ 한미약품, EZH1·EZH2 동시 저해…내성 극복형 표적항암제 개발
한미약품도 차세대 표적항암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 후보물질 ‘HM97662’는 암세포의 성장과 분화에 관여하는 후성유전 조절 단백질 EZH1과 EZH2를 동시에 억제하는 경구용 표적항암제다. EZH1과 EZH2는 종양 억제 유전자의 작동을 막는 데 관여하는 단백질로, 이 기능이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면 암세포의 성장과 생존을 촉진할 수 있다.
기존에는 EZH2만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치료 전략이 활용돼 왔지만, EZH2를 차단할 경우 EZH1이 대신 활성화되면서 약효가 떨어지거나 내성이 생길 수 있다는 한계가 지적돼 왔다. HM97662는 EZH1과 EZH2를 동시에 차단해 이 같은 보완 작용을 막고, 암세포 성장 억제 효과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설계됐다. 비임상에서는 기존 EZH2 저해제에 내성을 보이는 암세포에서도 성장 억제 효과가 확인됐다.
현재 한미약품은 한국과 호주에서 진행성 또는 전이성 고형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2025년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공개한 초기 결과에 따르면 총 28명의 환자가 50~350mg 용량을 하루 한 번 투여받았으며, 대부분 4차 이상의 표준 치료를 받은 뒤에도 치료 선택지가 제한된 환자들이었다. 이 가운데 일부 환자에서는 종양 크기가 의미 있게 줄어드는 ‘부분관해’와 암이 더 이상 진행하지 않는 ‘장기 안정병변’이 관찰됐다. 치료 중단이나 사망으로 이어지는 중대한 독성 없이 관리 가능한 안전성도 확인됐다.
한미약품은 단독요법뿐 아니라 병용치료 가능성도 넓히고 있다. AACR 2026AACR(미국암연구학회·American Association for Cancer Research)에서는 SMARCA4(세포의 유전자 발현과 DNA 구조 조절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 결손 등 특정 유전자 이상이 있는 폐암 모델에서 HM97662와 DNA 손상 유도제를 함께 투여했을 때 항암 효과가 강화되고 기존 약물 내성도 극복할 가능성을 확인한 비임상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한미약품은 이를 토대로 효과가 기대되는 환자군과 암종을 구체화하고 후속 병용 임상으로 개발 범위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 |
| ▲사진=온코닉테라퓨틱스 제공 |
◇ GC녹십자, ‘인비보 CAR-T’로 차세대 혈액암 치료제 도전
GC녹십자는 기존 항암제와 다른 접근법인 차세대 세포·유전자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지난 6월 앱클론과 전략적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환자의 몸 안에서 직접 CAR-T 세포를 만들어내는 ‘인비보(in vivo) CAR-T’ 치료제 공동 개발에 착수했다.CAR-T는 환자의 면역세포인 T세포에 암세포를 찾아 공격하도록 하는 ‘키메릭 항원수용체(CAR)’를 장착해 치료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현재 상용화된 CAR-T는 환자의 혈액에서 T세포를 꺼낸 뒤 유전적으로 변형·증식시켜 다시 주입하는 ‘엑스비보(ex vivo)’ 방식이 대부분이다. 일부 혈액암에서 높은 치료 효과를 보였지만 환자마다 별도로 세포를 채취하고 제조해야 해 생산 기간이 길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한계가 있다.
GC녹십자와 앱클론이 개발하려는 인비보 CAR-T는 이러한 제조 과정을 환자의 몸 안에서 직접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mRNA(단백질을 만들도록 세포에 정보를 전달하는 유전물질)를 지질나노입자(LNP)에 담아 T세포에 전달하면, 체내 T세포가 스스로 암세포를 인식하고 공격하는 CAR-T 세포로 바뀌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회사 측은 환자 세포를 별도로 채취·배양하지 않아도 돼 향후 ‘기성품(Off-the-shelf)’ 형태로 대량 생산하고 당일 투여할 수 있는 치료제 개발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GC녹십자는 mRNA를 지질나노입자에 담아 원하는 세포에 전달하는 mRNA-LNP 기반의 세포 특이적 전달 기술과 GMP(의약품 제조·품질관리 기준) 생산 역량을 제공하고, 앱클론은 CAR-T 기술과 특정 T세포를 찾아가는 항체 기술, 기존 CAR-T 임상 경험을 접목한다. 이를 통해 체내에서 원하는 T세포에만 유전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공동 플랫폼을 구축하고 혈액암을 비롯한 다양한 암종을 대상으로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할 계획이다.
양사는 현재 인비보 CAR-T 공동 플랫폼 구축과 후보물질 발굴을 추진하는 초기 연구 단계로, 향후 후보물질 선정과 비임상시험을 거쳐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 진입해야 한다. GC녹십자와 앱클론은 이를 토대로 비임상·임상 개발을 가속화하고 글로벌 제약사와의 파트너십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저작권자ⓒ 사회가치 공유 언론-소셜밸류.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